막, 도구, 의도, 양자 :: 2011/05/27 00:07


경계는 가상으로 설정한 막(membrane)이지 실체가 아니다. 근데 살다 보면 경계를 '막'이 아닌 하나의 견고한 '벽'으로 믿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막'으로 구성된 존재다. 인간 '막'은 수많은 물질적/비물질적 정보들이 빠른 속도로 투과되는 다이내믹한 공간이다. 인간의 '안'과 '밖'을 과연 명확히 규정할 수 있을까? 인간의 '안'과 '밖'을 명확히 규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인간을 완전 독립된 개체로 규정하고 생존을 위해 경쟁의 몸부림을 지속하는 존재로 살아가게 해야 이익을 보는 구조가 만연되어 있어서 그런 환상이 Fact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도구
인간은 편하게(?) 살기 위해 도구를 발전시킨다 도구가 진화하면 할수록 인간의 삶은 간접화/가상화의 물결 속에 휩쓸려가게 된다. 도구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인간은 '섬'이 되어간다. 도구는 인간과 인간을 매개한다. 매개 당하는 존재는 소외를 당하는 경향이 있다. 도구는 인간을 소외시킨다. 자본, 기술, 미디어는 모두 경지에 이른 거대한 도구들이다. 도구를 통한 커뮤니케이션도 분명 의도를 담은 메세지를 발신/수신하는 과정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도구에 의존하는 커뮤니케이션이란 설정 자체에 함정이 있다. 도구가 규정하는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매개 당하는 과정에서 의도의 감도는 저하되기 마련이다. 도구를 통해 나의 의도를 발신한다고 생각해도 실상은 도구의 의도를 대신 발신하는 의도 에이전트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도구가 advanced 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의도
만물은 저마다 의도를 갖고 있다. 하물며 인간이 고생고생해서(?^^) 축조한 자본/기술/미디어와 같은 거대 도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자본은, 기술은, 미디어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하여 시시각각 우리에게 의도된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만물은 저마다 자신만의 메세지를 발신한다. 인간을 향한 거대 도구의 메세지 발신은 증폭의 양상을 띠고 있다. 그에 비해 도구를 향한 인간의 메세지 발신은 미약하기 그지 없다. 인간-도구 간 메세지 flow의 비대칭 현상. 고유한 나만의 '의도'를 갖고 있어야 한다. 나만의 정체성에 기반한 unique한 의도를 견지할 수 있다면, 어떤 도구를 사용한다 해도 그 도구의 의도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의도를 제대로 발산할 수 있다.

양자
광물, 식물, 동물, 인간은 모두 양자(quantum)적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인간이 발전시킨 문명은 인간에게 원자(atom)적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도구를 선사했다. 가시적 원자가 암묵적 양자를 구축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구 문명은 인간을 자꾸 원자(atom)적 존재로 환원시키려 한다. 하지만 인간은 원자(atom)적 존재로만 환원시키기엔 너무나 양자(quantum)적이다. 바로 여기에 서구 문명의 비극이 존재한다. 나와 타인이 대화할 때, 타인은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바라보고 느끼고 대화하는 게 아니다. 타인은 자신의 인식체계 안에 별도로 '가상의 나'를 새롭게 구축하고 그것을 인지하는 거다. 그건 '실재하는 나'와 다른 별개의 존재다. 수시로 탄생하는 '나'



PS. 관련 포스트
생각의 파동, 언어의 파동
진동적 존재로서의 마음 2 - Compilation Post
가설, 알고리즘
심로,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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