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하고 읽지 않기 :: 2014/04/16 00:06

책을 사놓고 읽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책장에 쌓여있는 책들의 상당수는 읽지 않은 책들이다.  얼핏 보면 무기력한 공간처럼 보인다. 옅은 호기심으로 그쳤던 마음 흐름의 역사라고나 할까.  돈을 지불할 정도로 관여도 높았던 취향의 행로.  결국 헛스윙으로 그친 셈이지만, 그 궤적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인스타페이퍼나 포켓으로 웹 컨텐츠를 모은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돌아보면, 수집한 컨텐츠의 대부분은 단순 아카이빙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압도적이다. 대부분 읽지 않고 버려진 상태에 놓여 있다. 인스타페이퍼/포켓에 가득 쌓여 있는 웹 정보들. 엷은 호기심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모아 두었던 제목들이 한 번도 클릭을 당하지 않고 방치되어 있는 건가. 아니면 잠시라도 나의 관심을 받았던 헤드라인들이 의미 있게 조합되어 있는 생각 재료들일까.

사놓고 읽지 않기.
모아놓고 읽지 않기.

그건 읽지 않는 게 아니다.
그건 무관심도 아니고 방치도 아니다.

내가 읽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무의식이 그걸 읽고 있다.
나란 존재는 그것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것들과 내가 연결될 수 있게 해주는 에이전트들이다.  내가 모아놓은 것들은..

연결의 중개인.

난 수시로 중개인을 선임하고 있는 것이다.

나 스스로 모든 것들을 인지하고 지각할 수 없어서 중개인을 선임해서 중개인의 프레임을 통해 온 세상을 직시하게 되는 것이다. 중개인을 일단 지명해 놓으면 그 다음부터는 중개인들이 알아서 나를 위해 활동을 해준다. 사놓은 책을 내가 거들떠 보지도 않더라도, 모아놓은 웹 컨텐츠들에 시선 한 번 주지 않더라도 그것들은 암묵적으로 나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고 나는 그들의 활동에 어떤 식으로든 의존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중요한 건 뭔가를 중개인으로 선임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런 선임의 역사가 지금 이 순간도 계속 축적되고 있다는 것이다.

책장에 놓여 있는 책들의 제목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포켓에 등록되어 있는 웹 컨텐츠의 제목을 쓰윽 스캐닝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중개인들과 눈 인사를 나누고 있는 것이고 그런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나는 계속 자극을 받게 된다.
설사 눈길 한 번 안 준다고 해도 나의 중개인들은 알아서 활동을 한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를 위해서.
그것의 메커니즘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뿐, 그 메커니즘은 지금도 플랫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중요한 건,
수집이 얼마나 중요한 활동인가를 자각하는 것이다.
그런 각성만 뚜렷하다면, 그리고 지속적으로 수집을 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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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imaster | 2014/04/16 02:1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좋은글 읽고 갑니다. 책사서 안읽는것에 대하여 조금 걱정(?)을 던듯해요 ^^

    • BlogIcon buckshot | 2014/04/16 09:24 | PERMALINK | EDIT/DEL

      책에 관심을 갖고 책을 사는 행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듯 합니다. ^^

  • BlogIcon 아크몬드 | 2014/04/16 13:42 | PERMALINK | EDIT/DEL | REPLY

    더불어 출판 시장도 활성화되구요. ㅎㅎ
    저도 사놓고 상당히 많은 수를 못읽고 있었는데, 스스로를 못다한 일에 얽매이게 하는 것보다 쿨하게 놔주는 것이 나을 것 같네요. 뇌가 억지로 시킨다고 몸이(특히나 눈이 고생...) 따라하다 보면 마음에 남는 것이 없더라구요.

    • BlogIcon buckshot | 2014/04/16 22:47 | PERMALINK | EDIT/DEL

      예, 쿨하게 놔주다 보면 마음도 여유를 찾고 새로운 시각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

  • 강석원 | 2014/04/17 21:3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도 오늘부터 수집을 하면서 글을 위한 식량을 좀 쌓아두려 하는데, 그렇게 쌓아나가는 과정만으로도 도움이 된다니 신기하게 여겨집니다ㅎ

    • BlogIcon buckshot | 2014/04/18 20:49 | PERMALINK | EDIT/DEL

      '수집'에 대한 이해를 해나가는 과정 자체에 즐거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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