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빚 :: 2013/10/18 00:08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요구되는 적정한 수면량이 있다. 적정량의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그것은 고스란히 수면빚으로 체내에 축적된다. 그래서 자신에게 적합한 수면량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평상시에 잘 지켜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축적된 수면빚이 피로와 스트레스로 전환되어 결국 나를 괴롭히게 된다.

성찰도 마찬가지다.
적정량의 성찰을 꾸준히 수행하지 않으면 고스란히 성찰빚으로 체내에 축적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찰은 선택이 아니다. 필수다.
성찰을 하지 않으면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된다. 나의 눈은 바깥을 향해 있어서 끊임없이 나를 향한 성찰의 시선을 가져가지 않으면 나의 눈은 타인을 판단하고 타인을 오해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성찰에 일정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면 나의 '관'은 자꾸만 편향성을 더해가게 되고 균형감각을 상실한 나의 프레임 속에는 왜곡된 쓰레기 정보들이 가득 유입되면서 나는 성찰을 엄두도 낼 수 없는 대규모 성찰 채무자로 전락하게 된다.

나에게 성찰빚이 얼마나 존재하는가를 체크하고 싶다면 아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된다.
"최근에 한 비판 중에서 나를 대상으로 한 비판이 몇 %나 되는가?"

만약 나를 향한 비판이 0%라면 성찰빚은 어마어마한 규모가 될 것이다. 나는 무조건 옳고 타인에 대해서만 비판의 잣대를 들이댔을 테니 말이다. 나를 스스로 꾸짖고 자발적인 반성을 최근에 한 경험이 없다면 성찰로부터 멀어진 일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성찰을 지속하지 않으면 성찰빚은 서서히 늘어나게 되어있고 늘어난 부채는 더욱 성찰로부터 멀어진 삶을 나에게 강요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요구되는 적정한 성찰량이 있다. 적정량의 성찰을 지속적으로 취하지 않으면 그것은 고스란히 성찰빚으로 축적된다. 그래서 자신에게 적합한 성찰량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평상시에 잘 지켜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축적된 성찰빚이 삶의 품질 저하로 이어지면서 결국 나에게 독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삶의 품질 지수를 측정하고 싶은가?  분자를 분모로 나누면 된다.
  - 분자: 나를 성찰하고 나를 비판하고 반성한 것
  - 분모: 타인을 비난하는 마음을 먹거나 말을 뱉은 것

1을 훌쩍 넘는가?  아님 0으로 수렴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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