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소, 알고리즘 :: 2013/02/25 00:05

생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짜투리 시간이 생긴다. 심지어는 모바일 시대를 맞아 소비자들의 짜투리 시간을 자신의 비즈니스에 득이 되는 쪽으로 유린하려는 사업적 움직임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보니 짜투리 시간은 계속 증가 추세에 놓여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은 짜투리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걸 맘 편하게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 먹듯 써버린다. 그런데.. 짜투리 시간의 주체는 누구인가? 스마트폰인가? 나인가?  정신줄 놓고 있으면 나의 짜투리 시간은 그걸 삼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모바일 비즈니스 등에게 속절없이 강탈당하고 만다. 짜투리 시간을 나의 것으로 만들 것인가, 비즈니스의 것으로 만들 것인가는 삶의 질을 가늠할 중요한 갈림길이다.

갈림길에선, 스탠스를 명확하게 잡아야 한다.
스탠스를 분명하게 취하지 않으면 나를 향한 외부의 의도에 무작정 휘말릴 수 밖에 없다.

짜투리 시간에 대한 나의 태도를 선명하게 정의해보자. 짜투리 시간의 주체를 나로 삼아보자. 내가 짜투리 시간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짜투리 시간을 온전히 나의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비즈니스적 의도에 의해 나의 짜투리 시간이 유린당하지 않으려면 짜투리 시간 활용을 통해 누가 유익해지는가를 가늠해봐야 한다. 애니팡과 같은 모바일 게임에 짜투리 시간을 투입하는 것은 순간적인 뇌의 즐거움을 위해 모바일 사업자에게 나의 짜투리 시간을 갖다 바치는 행위이다. 그건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자를 위하는 행동이다. 나의 짜투리 시간이 모바일 게임 비즈니스를 살찌우고 있단 얘기다. 그럼 나를 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시시각각 뇌에서 일어나는 각종 화학 반응들에 의해 휘둘리기 십상이다. 뭔가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있을 때 나는 그것에 수시로 지배와 제어를 당하고 불안이 인도하는 기계적 삶의 패턴을 로봇처럼 답습하며 무기력한 몸짓을 반복하게 된다. 불안이 나를 제어하는 삶. 그 상황에 짜투리 시간을 투입해보자. 짜투리 시간이 나에게 허락될 때 그 시간을 애니팡하는데 사용하지 말고 나의 불안을 직시하는데 활용해 보자. 짜투리 시간의 힘은 은근 강해서 단 1분의 시간이라도 불안 직시에 투입될 경우, 불안은 움찔하면서 특유의 위용에 흠집이 생기고 그런 틈을 제대로 노리고 들어가면 불안은 주도권을 유지하지 못하고 어느덧 나의 자존에 위축당하는 수세에 놓이게 된다.

짜투리 시간의 힘은 의외의 맥락에서 나온다. 짜투리 시간은 연속성이 담보되지 않는 시간이어서 단절의 맥락에서 작동된다. 어떤 무거운 존재라도 짜투리 시간의 프레임에서는 가벼움 가득한 시선으로 응시당하게 된다. 나에게 위풍당당하게 군림해왔던 '불안'이란 존재를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낯선 시선으로 바로보면 불안은 예전처럼 나를 쉽게 대하지 못하고 나를 공략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게 된다.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수시로 기억을 휘발시키며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 불안을 바라보자. 낯설어하는 눈빛에 편안함으로 대응하긴 무척 어렵다. 짜투리 시간의 힘은 '낯설어하기'에서 나온다.

무거운 것을 낯설게 바라보자.
나에게 주어진 짜투리 시간으로 무거운 것을 낯설게 대할 수 있다면
짜투리 시간은 더 이상 짜잘한 시간이 아니라 나름 짧고 파워풀한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생소하지 않은 것을 생소하게 바라보는 것. 억지로 그렇게 하긴 어렵다. 하지만,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 짜투리 시간이 허용될 때마다 메멘토의 남주인공이 되어서 무거움에 가벼움으로 대응해보자. 무거움이 가벼움이 되고 가벼움이 무거움이 되는 짜투리 시간의 매력에 아마 흠뻑 빠지게 될 것이고, 그런 시간들이 축적될수록 짜투리 시간은 나의 풍요를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기억과 자아 사이
짜투리와 메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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