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배달 :: 2014/05/12 00:02

배달부는 박스를 배달한다
배달부는 자신이 무엇을 배달하는지 굳이 알 필요가 없다. 배송이 되어야 하는 지점까지 정확히 박스를 옮기면 된다. 박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는 순간 배달의 본분에 대한 망각이 시작된다. 배달은 이행되어야 한다.

인간은 배달부이다
어딘가로부터 어딘가를 향해 무엇을 계속 운송하고 있다. 박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잘 알지 못한 채 본능적으로 뭔가를 운반하고 있다. 일평생을 단 한 번도 상자 안을 궁금해 하지 않고 배달을 할 수도 있을 만큼 배달 본능은 극강의 수준을 자랑한다. 인간의 몸과 마음 속에 뿌리 깊게 입력된 배달 프로그램은 인간을 강력하게 휘몰아 간다. "나는 무엇을 배달하는가"?란 질문도 둔중하기 그지 없지만, 더욱 난해한 질문이 도사리고 있다. "나는 왜 배달하는가?"란 질문.

왜 배달해야 하는 것일까
왜 나는 특정 형질의 유전자를 타고 났으며, 그것을 왜 보존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작동시키며 그것을 후대로 전달하려는 본능을 왜 견지하고 있는 것일까왜 그래야 하는 것일까왜 나는 상자 안을 궁금해 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만큼 나를 규정하고 그것만큼 나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요소도 딱히 없을 텐데, 난 상자 안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무기력한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내가 운반하고 있는 그것을 왜 난 알려고 마음을 먹어도 쉽게 알 수가 없는 것일까? 정말 나는 철저하게 통제된 배달 프로그램 속의 코드 몇 줄에 불과한 것일까?

그저 배달만 하면 되는 것일까?
배달부라서, 상자 안을 열어보도록 규정되지 않았으므로, 배달부로 프로그래밍된 인간은 상자 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고 배달에만 집중하면 잘하는 것일까? 배달의 에너지가 소진되고 난 후의 인간은 무엇을 얻게 되는 걸까? 상자 안에 도대체 뭐가 있길래 인간은 평생 운반을 하게 되는 것일까?

상자 속에 인간이 있다.
배달하는 자와 배달되는 것. 뒤집어 볼 수 있다. 상자 안의 뭔가가 인간을 배달하는 것이다. 상자 안의 뭔가가 이동하는 경로가 인간의 경로이다그 무엇은 상자 안에서 상자 밖의 인간을 붙들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누가 누굴 운반시키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상은 배달이고 배달의 주체와 객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 보일 수 있다.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 언제 어디로
잘 모르겠으나 배달은 이 순간도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다.
배달은 작동된다인간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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