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 공즉시색] 반야심경, 천개의 고원, 노마디즘 :: 2007/09/22 01:24


色不異空 (색불이공)
空不異色 (공불이색)
色卽是空 (색즉시공)
空卽是色 (공즉시색)


빅뱅이론에 따르면 200억년 전에 우주는 점과 같은 상태에서 대폭발이 일어나 팽창을 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는 설을 주장한다.  '크기가 0이고 밀도와 온도는 무한대'인 특이점 상태에서 우주가 생성되었고 계속 팽창을 거듭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팽창을 멈추고 수축이 전개되면서 결국 하나의 점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현대물리학의 가설은 반야심경에서 주장하는 :"색(물질)이 공에서 나오고 공은 색에서 나온다.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라는 컨셉에 상당히 부합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색'은 무엇을 나누거나 단편적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의미이고  무엇을 나누는 것이 인간의 단편적 사고의 한계에서 파생된 행위이니 결국 인간의 시각은 본질을 볼 수는 없는 것이고 '물질의 실재'와 '관찰을 통한 물질의 인식' 간에는 gap이 존재한다는...

양자론은, 전자의 위치는 일정한 궤도를 돌지 않고 언제 어디서 튀어 나올지 모르는 전자로 실재한다는 것..  질량을 측정하기 위해 관찰하면 위치를 측정할 수 없고, 위치를 측정하려면 질량을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전자라는 물질은 확률적 존재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관찰자의 마음먹기에 따라 관측의 결과가 달라지는 전자의 행태..   관측이 물질에 영향을 준다..  마음이 물질에 영향을 준다..  현대물리학과 반야심경은 너무도 닮아 있는 모습이다.

또한 질 들뢰즈가 '천개의 고원'에서 말하고 있는 '리좀'이란 개념도 나름 유사한 컨셉을 지향하고 있는 것 같다.  '리좀'이란, 이런저런 줄기들이 어떤 중심뿌리 없이 분기되고 접속되는 모양을 의미한다.  질 들뢰즈는 펠릭스 가타리와 함께 쓴 '천개의 고원'이란 책을 단 2명의 저자에 귀속시키는 것을 거부한다. '천 개의 고원'이란 책이 들뢰즈, 가타리라는 두 사람의 저작으로 간주되지만 그 안에서 그들이 인용한 내용들은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발언했던 것이고 인용이 아닌 내용도 결국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읽고 듣고 경험한 수많은 저자들의 발언을 대신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천개의 고원'은 그런 수많은 타인들의 발언들이 중첩된 연쇄로 이뤄진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혼자 스스로의 생각으로 말하는 경우에도 이미 다른 많은 사람들의 말을 하는 것이고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배치 안에서 나름의 집합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책'은 대상도 주체도 갖지 않는다는 개념이 나오게 된다.  "책을 하나의 주체에 귀속시키는 순간, 질료의 가공과 그것의 관계가 갖는 외부성을 무시하게 된다"는 들뢰즈의 말은 반야심경의 컨셉과 매우 닮아 있다고 보여진다.

결국 물질은 그것과 연결된 수많은 다른 물질들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수많은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는 확률적 존재이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물질과 접속하고 만나는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이 되는 것이다.  '입'이 성대와 접속하여 소리의 흐름을 절단,채취하는 경우엔 '말하는 기계'가 되고 식도와 접속하여 영양소의 흐름을 절단,채취하는 경우엔 '먹는 기계'가 되듯이 욕망/의지에 따라 접속하는 항이 달라짐에 따라 전혀 다른 기계로 작동한다는 것은 양자론의 미시세계나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거시세계 모두 긴밀하게 연결된 물질 네트워크 세계에서 접속과 관계에 의해 다양한 실체로 확률적 생성/변이를 거듭하면서 색즉시공/공즉시색의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반야심경, 천개의 고원/노마디즘은 책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플랫폼이란 생각이 든다.  접속할 때마다 읽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기계가 되게 해주는 책이기 땜에... 

솔직히 반야심경을 계속 읽어도 '공(空)'이 뭔지에 대해선 아직도 명쾌한 정의를 내리기가 힘들다.  하지만 딱히 말로 규정하진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만 한계투성이인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뭔가가 내 마음 속에서 구체화되고 있다는 느낌은 분명히 어떤 확률적 분포로 존재하는 것 같다.  ^^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 - 10점
성법 지음/민족사

천 개의 고원 - 10점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지음, 김재인 옮김/새물결

노마디즘 1 - 10점
이진경 지음/휴머니스트

노마디즘 2 - 10점
이진경 지음/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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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텍스트는 외부의 주름이다.

    Tracked from 맑은독백 | 2009/06/11 10:32 | DEL

    텍스트는 외부의 주름이다. 몇 일전 inuit님으로 부터 시작한 독서에 관한 릴레이가 블로그 스피어 여러곳에서 만개하고 있습니다. 바톤을 받아 이어진 연을 쫓아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즐겁습..

  • BlogIcon 풍림화산 | 2007/09/22 02:5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네요. ^^
    여기서 말하는 공(空)은 다른 데서도 쓰이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크기가 0이고 밀도와 온도는 무한대'인 특이점 상태" 이게 空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7/09/22 12:09 | PERMALINK | EDIT/DEL

      공(空)의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특이점'상태를 공과 유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구요. 앞으로도 계속 공에 대해 생각을 해볼 계획입니다. 한가지 관점이나 양상으로 한정 짓지 않고 다이내믹하게 공을 바라보는 것이 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덧글 감사합니다.

    • BlogIcon 풍림화산 | 2007/09/22 13:20 | PERMALINK | EDIT/DEL

      제가 많은 책을 읽어본 바는 아니지만 공의 개념에 대해서 다른 책을 통해서 이해하기는 그렇습니다.
      空은 無와 달리 0 또는 무한대의 빈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이죠.
      결국 공이라는 것은 근원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로 인해 생긴 색, 다시 근원으로의 회귀.
      이러한 순환 고리에서 공을 바라본다면 여기서 색과 대조되는 공은 시초가 되는 특이점의 상태로 해석이 됩니다.
      buckshot님이 말씀하신 동양 사상으로의 귀착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제 덧글에서도 말씀드렸다 시피 서양 사상은 그 근원 자체가 색입니다. 단편적 시각에서의 접근이지요.
      그러나 동양 사상은 근원적인 본질적인 부분에서의 접근이기에 결국 동양 사상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7/09/22 14:16 | PERMALINK | EDIT/DEL

      예, 空을 무한대의 빈 상태, 근원으로 보는 것이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모든 물질이 空이란 근원성을 갖고 여러가지 色의 모습으로 다이내믹한 생성/변이의 흐름을 탄다고 판단합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서양사상은 色에 가깝고 동양사상은 상대적으로 空에 가까운데 서양과 동양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초기엔 서양의 환원주의에 기반한 色 기반의 어프로치가 동양을 압도하고 동양을 서양화시켜 나가지만 色이 차면 자연스럽게 空으로의 이동이 가속화되는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거시적인 우주 관점에선 空↔色 순환이 아주 느린 속도로 흘러가지만 미시적인 양자 관점에선 空↔色 순환이 아주 빠른 속도로 이뤄질 것 같습니다. 거시와 미시의 중간에 해당하는 인간세계는 평균적으로는 중간의 속도가 나타나면서 케이스바이케이스로 고속순환과 저속순환이 공존하는 상황이 아닐까 합니다. 풍림화산님께서 관심 가져주시고 수차례 덧글을 주신 덕분에 제가 제 생각을 발전적으로 다듬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 BlogIcon 풍림화산 | 2007/09/22 21:26 | PERMALINK | EDIT/DEL

      예... 동의합니다. 잘 정리해주셨네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했듯이 어떤 것이 먼저이고 우선이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다만 지금의 흐름은 동양 사상으로 회귀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서양 사상의 영향을 받은 방법론등이 이제는 다시 그 근원적인 사람에서 찾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도 저도 동감하는 바입니다. buckshot님이 잘 정리해주셔서 저도 덧글 잘 읽고 갑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7/09/22 21:48 | PERMALINK | EDIT/DEL

      대충 꾸역꾸역 글 적어서 포스팅 올려놓고 풍림화산님의 통찰력있는 피드백 받아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느낌이 정말 좋습니다.^^

  • BlogIcon hyleidos | 2007/09/22 05:0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우주는 점과 같은 상태* 여기에서 출발 하고 종착을 하건 순환을 한다면 모든 것이 그 속에 녹아 있어야
    가능 하겠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사고, 영혼이라 부르는 것들 모든 인식 너머의 것들이 그 한 점에 있겠지요.
    공은 즉 색이고, 색은 곧 공한 것이다.
    아무리 나누어 대상을 만들어 보아도 공 할것이고, 그냥 뭉뚱그려 생각해도 마야는 실재하겠지요.

    인간이 우주를 바라보는 것이 그가 그 속에 포함된 존재임을 알면 고통도 조금씩 녹아 들겠지요.

    • BlogIcon buckshot | 2007/09/22 12:18 | PERMALINK | EDIT/DEL

      점에서 출발해서 무한팽창을 하고 다시 점으로 돌아가는 과정의 순환.. 결국 헤라클레이토스가 얘기한 '만물은 유전한다(everything flows)' 컨셉과도 맥이 닿는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유전하기 때문에 대상을 아무리 기가 막히게 잘 나누어도 모든 것은 결국 설명하기 어려운 '공'일 수 밖에 없고 '공'이라고 생각한 순간 다시 '색'이 발현되는 과정의 반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인간의 관찰/사고/표현의 한계를 얼마나 유연하게 극복할 수 있는가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마음에 있기 마련인데 그 마음이 얼마나 flow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보구요. 제가 블로깅을 하는 이유는 블로깅이 다양한 mind들과의 리좀적인 접속을 통해 mind fluidity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의미있는 방법론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블로깅한지 얼마 안되어 성과는 보잘 것 없지만 그래도 나름 progress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mobile mind 제고를 위해 블로깅을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 덧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BlogIcon hyleidos | 2007/09/23 01:21 | PERMALINK | EDIT/DEL

      저도 감사하고 또 반갑습니다.

      문제인지 답인지 모르겠지만, 공과 색이 서로 다르지 않다.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 생각이 미칩니다.
      우주가 대상이 아님(굳이 설명하자면 포함관계의 상위에 있음)을 직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화이트 헤드가 유물론적 과학적 사고를 비판하며 유기론적 관.... 을 가설하고 이끌어 낸 것도 어찌보면 너무나도 우스운 것으로 보이지만. 대상이 없는 사고의 방식이 너무 어려운, 오로지 대상만이 존재하고 대상만을 사유할 수 있는 세계에서는 그 오랜 시간이 당연한 것도 같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7/09/23 16:32 | PERMALINK | EDIT/DEL

      플라톤이 이데아를 논했을 때부터 서양은 오랜기간 동안 초월성을 꿈꿔 왔던 것 같습니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란 명제를 통해 시도했던 주체와 객체의 이원화는 결국 서양 사상/문명의 딜레마가 되어왔던 것 같구요. 대상을 분리시키고 철저히 분해하여 지배하고 안다고 생각하는 서양 특유의 사고체계가 너무나 오랫동안 지속되었다고 봅니다. 사실 주체와 객체를 나누는 건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기 편한 툴로써의 의미만 존재하는건데 그 이원화 툴을 진리로 착각하는 오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젠 그 오류의 늪에서 빨리 벗어나와야겠습니다. 근데 동양은 나름 훌륭한 사상적 토대가 있었고 이를 지금까지 꾸준히 발전시켜왔으면 좋았을텐데 서양 문명이 우월하다고 착각하고 이를 너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 BlogIcon snowall | 2007/09/23 00:4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사실 천개의 고원이라는 단어에서 "원"을 "환"으로 읽고 화들짝 놀랐습니다. -_-;

    • BlogIcon buckshot | 2007/09/23 00:59 | PERMALINK | EDIT/DEL

      어쩌면 정확히 보신건지도 모르겠네욤.. 사실 천개의 고원은 '환'자와 관련이 높은 책입니다.^^ 서양에서 번성해 온 '환'원주의의 대안적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어서요. 그러다보니 반야심경과 유사한 개념들이 자주 나옵니다~ 반야심경과 함께 읽으면 아주 좋을 책입니다. :)

  • BlogIcon soulart | 2009/05/14 20:46 | PERMALINK | EDIT/DEL | REPLY

    空이란..실재하는 것과 실재 하지 않는 사이의 시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철학서를 뒤진다 해도 실제 그 세계를 경험하지 않고선 어떠한 표현의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나타내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 이겠지요..^^
    밀도와 무한대...의 표현들을 위에서 봤는데..자연처럼 있는 그대로의 상태..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를 떠난 그냥 그 상태가 공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지금 것 느껴온 것은 여기 까지네요..^^
    언어로 표현 하는 사람이 못 되지만요..실천이 최고겠지요.^^
    특히 인간 관계에서 오는 여러 부딪힘과 나와의 한계에서 벗어 날 수 있는 힘은 이 공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수양 하는 마음을 갖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앗!!다시 시작하는 마음이 0이겠네요..ㅎㅎ)새롭게 세상을 보려하고 더 넓은 마음을 가지려고 할 때.그 마음으로 인해 삶은 아름다워지겠지요..이것이 색즉시공 공즉시색 아닐까 합니다. 완벽할 순 없겠지만 이러한 마음의 노력이 변함없이 지속될 때 空이 무엇인지, 무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 같습니다. 그게 영원함이고 본질아닐까 합니다.
    결국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행복한 삶과 자아가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여러 철학서들과. 종교.예술이 반복 되는 것이기에..

    • BlogIcon buckshot | 2009/05/14 22:52 | PERMALINK | EDIT/DEL

      사람들은 모두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듯 못 느끼듯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자신만의 정의가 있을 것 같은데요.

      soulart님은
      통찰력이 가득한 정의를 갖고 계시네요.

      soulart님의 정의 하나만으로도
      오늘 하루가 충만해지는 느낌입니다.

      실재와 비실재 사이
      존재와 비존재를 떠난 상태

      사이와 일탈

      그리고, 마음의 수양

      깨달음에 대한 저의 욕망을 강렬하게 자극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BlogIcon 맑은독백 | 2009/06/11 11:0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 정말 감동적입니다...
    개인적으로 노마디즘, 천개의 고원을 읽으려 맘 잡던 중이라..
    더욱 이글이 귀하게 다가옵니다.

    연구공간 수유 너머를 통해
    불교에 대한 관심과 들뢰즈의 관심이 일던 차에
    이 글을 봤습니다.

    조금은 시간이 지나야 될 듯합니다만,
    언젠간 읽고 흔적을 남기는 시간이 오길 기대해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9/06/11 19:54 | PERMALINK | EDIT/DEL

      제가 노마디즘, 천개의 고원을 제대로 읽지 않은터라 아쉬움이 남는 차에 맑은독백님 포스트를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다시 노마디즘과 천개의고원을 집어들어야 겠습니다. 맑은독백님의 리뷰도 기다릴거구여~ ^^

  • 전라도사나이 | 2011/07/15 23:0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것은 주역에서 무극이란 무에서 에너지화 된 태극이 되어 음과 양으로 분리되고 이것이 다시 물질계에서 6개의 변수에 의해서 2^6개 즉 64가지 경우의 수를 만드는데..........즉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 무의 세계에서 유의 세계로 변화된 세계이지요 ...무의 세계는 에너지 세계인데 그 에너지의 세계 이전의 무는 에너지 이전단계입니다.....이것을 반야심경에서는 공이라고 하고.....유대의 카발라에서는 아인소프 주역에서는 바로 무극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물질로 현현한 세계는 하나이지요 즉 우리나라에서 천부경에서는 음과 양 모두 하나라고 본것입니다...그래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되는것이구요

  • 전라도사나이 | 2011/07/15 23:05 | PERMALINK | EDIT/DEL | REPLY

    無는 energy 의 세계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주역에서는 陰에 해당하고
    有 즉 있음의세계 물질계는 보이는 陽의 세계이지요.
    E=mc^2
    즉 에너지와 물질의 등가 법칙이 성립하는 식인데 우변의 물질의 특성인 질량이 있고 좌변은 에너지인데 이것은 파동이 아주 짧아서 형태가 없는 기체나 불처럼 불완전한 상태이지요 그러나 이것이 핵자 즉 양성자나 중성자에 잡혀서 안정화 된것이 물질입니다.....

  • 전라도사나이 | 2011/07/15 23:0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 우주는 특이성 즉 에너지 상태에서 빅뱅으로 물질로 현현한것이지요.....이것이......허블의 법칙인데.....이것을 물리학적으로 설명한것이고 불교철학이나 기독교에서도 있음의 세계 이전을 무로 상정합니다
    무라고 해서 진짜 무가 아닌 에너지 상태를 의미하지요....

  • 전라도사나이 | 2011/07/15 23:08 | PERMALINK | EDIT/DEL | REPLY

    끝으로 특이성 상태는 에너지 상태를 의미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1/07/15 23:23 | PERMALINK | EDIT/DEL

      포스팅한지 4년 만에 선물받는 댓글이 왜 이리도 기쁜지요. 그리고 너무도 귀한 피드백에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낍니다. 이 주제에 대한 생각을 4년간 쉬었네요. 이제 다시 생각놀이를 전개해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귀한 선물 너무 감사합니다. ^^
      http://twitter.com/#!/ReadLead/status/91874846216171520

  • BlogIcon 명언 | 2012/01/23 04:3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색즉시공 공즉시색. Nothing is Form, Form is Nothing. 드디어 그의미가 가르키는 바를 이해 했네요. 그의미를 이해 한것이 아니라.. 저도 님처럼 생각 했으나, 그건 다.. 달을 가르 키는 손가락을 여전히 붙잡고 그 손가락에대한 논문을 쓰는것이랑 다름 없더군요. 달은 단지 가르켜 질수만 있음으로.. http://advait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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