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독서 :: 2014/04/30 00:00



장편소설의 초중반을 읽었다. 60~70% 정도를 읽은 셈이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로 진입하지 않고 1개월 이상 그 상태로 머물러 있다. 소설이 재미있어서 분명 후반부가 어떻게 전개될 지 매우 궁금했지만 가장 궁금한 그 지점에서 가차없이(?) 중단했다. 읽기를 중단했지만, 남은 후반부에 대한 다양한 상상이 머리 속에서 새록새록 기어 나온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주인공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해 관계의 사슬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 주인공의 협력 관계에 있는 자들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주인공과 갈등 관계에 있는 자들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인물과 인물 간의 상호작용은 어떤 변수를 만들어낼 것인지, 관계의 장은 어떤 색깔을 띠며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복합적인 관계망은 어떤 방식의 결론을 낼 것인지, 소설의 결말에서 나는 어떤 메세지를 생성하게 될 것인지. 소설의 완결을 본다는 건, 어찌 보면 참으로 싱거운 이벤트가 아닌가 싶다. 굳이 소설가가 머리를 쥐어짜며 얻어낸 결과물이 나에게 적합한 엔딩이 될 수 있을지, 작가가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끝 모습을 내가 시간을 투입하며 확인할 필요가 과연 있는 것인지.


장편소설을 하루 만에 내달리듯 다 읽어버리는 것보다 이렇게 하는 게 나름 괜찮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계속 '읽기'로만 일관하다 보면 기계적인 리딩 머신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았고, 소설의 구조와 메세지를 음미하기 보단 종착역에 빨리 도달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 나머지 여행의 향취를 충분히 만끽하지 못하고 질주하는 KTX와도 같은 모습이 되어 버리곤 했다.  달음질의 끝에서 확인하게 되는 건 상상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다소 허무(?)한 결말들. 물론 작가 입장에선 혼신의 힘을 다한 마무리였겠지만 독자 입장에선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하며 달려왔던 길이라서 어지간해선 엔딩 신에서 흠뻑 만족하기가 여간 쉽지가 않을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독자가 소설의 레일에서 이탈해서 자신 만의 노선을 따라 걸어가는 건 그닥 쉬운 일은 아니다. 자칫 실망스런 시나리오 전개에 허망하게 지쳐버릴 수도 있는 것이라서. 마치 고등학교 때 정석수학 공부하던 모습이 재현될 수도 있다. 문제를 풀다가 지쳐서 책 뒤에 있는 답안지를 슬쩍 보고 문제 풀이 방법을 의존적으로 익히던 그 시절. 실력이 늘기가 어려웠다. 문제풀이 기계가 되어 생각하면서 문제를 풀기 보다는 정해진 모범답안을 외워대는 시간들의 반복. 소설을 단선적으로 줄달음치듯 다 읽는 것은 상상력을 스스로 제한하는 독서 습관의 고착화의 길이다.


1개월의 중단 기간 동안, 나만의 엔딩이 어느 정도 형성되는 듯 싶다. 물론 작가가 정해 놓은 결말과 비교하면 매우 조악한 스토리라인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초중반을 읽으면서 이미 내 안엔 작가의 레일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나만의 서사가 천천히 움트기 시작했던 것이고 그렇게 생성되어 가는 나만의 스토리라인은 초중반을 다 읽은 시점에선, 유치하지만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의 색채가 입혀진 채 수줍은 듯 자신 만의 플로우를 진행한 것이다. 독자의 위치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전개시켜 온 나만의 소설 흐름을 자각하지 못하고 저자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 보편적인 소설 읽기의 양상이지만, 그건 왠지 모르게 아쉽다. 독자 참여형 소설 읽기의 방법론은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내재하고 있다. 그걸 서서히 인지할 수 있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면 독자는 더 이상 수동적 노선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 만의 레일을 구축할 수 있다. 특히 다양한 소설 읽기가 중첩된 스토리라인이 독자의 마음 속에 축조될 수 있다면 그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작품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셈. 물론 그걸 가시화된 언어 표현으로 옮기는 건 매우 어려울 수 있겠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 열린 마음으로 작가가 구성해 놓은 후반부를 읽어볼 것이다. 나의 엔딩과 어떻게 다른지, 나의 결말과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지, 나는 어떤 메세지를 발신했고 어떤 메세지를 수신했는지.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다. 그게 소설의 진정한 결말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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