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 알고리즘 :: 2009/04/22 00:02

이분법을 넘어서
장회익.최종덕 지음/한길사


작년에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물리학자와 철학자가 만나 자연과학/인문학에 대해 각자가 갖고 있는 생각을 부드럽게 주고 받으며 독자에게 폭넓은 사고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느낌이 좋아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던 기억이 난다.

유동, 알고리즘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책 내용 전반에 대한 리뷰 보다는 책에서 유독 내 시선을 사로잡는 한 부분만 추출해서 얘길 해보고 싶어진다. ^^   → 유독, 알고리즘  

이 책의 구성은 아래와 같다.
1. 과학과 철학의 만남  →  2. 지식의 누적과 전환:고전에서 현대로  →  3. 생명에 대하여  →  4. 동양과 서양  →  5. 의식과 물질  →  6. 대립과 화해, 물러섬과 나아감

제2장 '지식의 누적과 전환'에 아인슈타인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스위스 베른의 특허청 직원 아인슈타인은 26세였던 1905년에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하고, 1915년에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면서 과학사에 큰 획을 긋게 된다.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던 당시, 과학계엔 커다란 딜레마가 있었다.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맥스웰 전자기법칙의 등장이 기존 뉴튼 고전역학의 이론 체계와 정면 충돌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은 합쳐져 있고 서로 상대적이다'라는 기상천외한 개념을 담은 특수상대성이론을 과감하게 주장하고 이의 타당성을 입증하게 된다.

어떻게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은 합쳐져 있다''라는 터무니없는(?^^) 개념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그건.. 광속이 일정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시간/공간 개념이 뿌리째 흔들려야 했기 때문이다..  광속이 일정해야 했기 때문에..  광속이 일정해야 했기 때문에..  무식(?^^)하게도..


즉, 아인슈타인은 '광속은 일정하다'라는 신념을 끝까지 유지했고 시간/공간 개념을 자신의 신념에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다.  정말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시공간이란 거대한 개념을 자신의 신념 속에 억지로 부합시키려는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그리고 그걸 끝내 과학적으로 증명까지 해내는 궁극의 집요함이란..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개념에 대한 직관/고집스런 거대한 도전은 결국 인간의 인지 체계가 우주적 관점에서 얼마나 우스운 수준에 불과한 것인지를 깨우쳐 주게 되고 인간 세상에서 느낄 수 없는 시공간 합체 개념이 우주적 관점에선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아인슈타인과 동시대를 살았던 탁월한 수학자 데이빗 힐베르트는,
"아인슈타인이 수학과 물리에 대해 너무 몰랐기 때문에 상대성 이론을 구성하는 무모한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고 한다.  ^^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통해 과학의 딜레마를 풀었다.  하지만, 과학계는 또 다른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거시세계를 설명하는 상대성 이론과 미시세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의 충돌이 바로 그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에 대해 날카롭게 대립 각을 세우면서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를 모두 설명할 수 있는 대 통합 이론을 만들기 위해 연구에 매진하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고, 지금까지도 자연의 최종 이론을 찾기 위한 거대한 지적 모험은 수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 

왜 아인슈타인은 최종 이론을 완성하지 못했을까? 

아마도 그건..  아인슈타인이 너무나도 위대한 상대성 이론의 틀 속에서 무식(?^^)하지 않게 사고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전역학이란 틀을 벗어나 우주 레벨의 사고와 신념으로 인간 레벨의 개념을 파괴했던 아인슈타인이 특정 틀 속으로 침잠하는 순간, 더 이상의 혁명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아무리 위대해도, 그건 맥스웰의 전자기법칙, 뉴튼 고전 역학, 양자 역학과 마찬가지로 만물의 일부분에 초점을 맞춘 과학의 틀에 불과하다.  모든 틀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사고하면서 과학계의 딜레마를 해결했던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구성하는 신념 체계 속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간의 충돌을 해결할 수 있는 과감하고 직관적인 가설, 신념은 추출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난 과학도 아인슈타인도 잘 모른다.  그냥 잘 모르면서 막연하게 추측해 본 것이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 간의 딜레마가 풀리기 위해선 아인슈타인 급의 직관/용기/고집이 필요할 것 같다.  우주의 본질을 관통하는 탁월한 가설과 그 가설이 신념이 되어 기존 사고 체계를 강제로 뒤집는 무식(?^^)한 혁명이 언제 또 출현할 수 있을 지 궁금하다.

공즉시색 색즉시공

아인슈타인은 공즉시색(空卽是色)을 했다.  무식하게도 상대성 이론을 꾸역꾸역 만들어 냈으니.
아인슈타인이 색즉시공(色卽是空)을 했다면, 무식하게 만들어 낸 상대성 이론을 무식하게 폐기하고 또 다른 무식을 시도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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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과 공간의 밀월관계

    Tracked from mepay 쇼핑몰 전문 블로그 | 2009/04/22 10:52 | DEL

    한 부자 사업가가 바닷가를 지나던 중 배 옆에 드러누운 채 노래를 흥얼거리며 놀고 있는 어부를 보았다. 그 모습을 본 부자는 어처구니가 없는 듯 물었다. "왜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고 놀고 ..

  • BlogIcon egoing | 2009/04/23 09:3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말씀하신 것처럼 학설이나, 지식은 다른 말로 인식의 틀일텐데, 이것은 수 많은 인식을 하나로 만들어버려서 오히려 진보에 방해가 되는 것도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인쉬타인이 수립한 가설은 운발도 먹혔던 것 같내요. '세상에는 아인쉬타인 같은 수 많은 천재들이 있었지만, 운좋게도 그런 가설을 세운 것이 아인쉬타인이었다' 결국 '수많은' 사람이 '서로 다른 가설'을 세우는데는 무지도 큰역활을 하내요.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9/04/24 09:42 | PERMALINK | EDIT/DEL

      학설과 가설 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혁명이 탄생하나 봅니다. 아인슈타인의 혁명은 집요함과 운의 기막힌 조화가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보여지구요.

      또한 아인슈타인의 사고혁명을 가능케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잘안띄는 지원도 크게 기여했을 것 같습니다. 혁명은 종합예술인가 봅니다. ^^

  • BlogIcon 덱스터 | 2009/04/25 14:2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인슈타인의 가설은 그 이전에 로렌츠가 했던 작업을 한 단계 발전시킨 거라고 봐야지요. 이미 그 이전에 로렌츠라는 학자가 이동하는 방향으로 공간이 수축한다면 이런 역설이 설명된다고 하면서 제안한 변환식이 있는데, 그 변환식을 그대로 사용하거든요. 물론 아인슈타인은 공간이 수축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 자체가 엮여있는 것이라는 가설을 도입해서 새롭다고 할 수 잇는 것이고요.

    아인슈타인은 끝까지 양자역학을 불신했다고 전해지는데, 그건 양자역학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불확정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는 데이비드 봄이라는 학자가 이 불확정성이 공간의 속성에서 나타난다는 가설을 도입했는데, 정설은 아니고 그저 눈길가는 이론 중 하나일 뿐이지요. 물론 당시의 코펜하겐 해석(측정하기 전에는 그 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로 대표되지요 ^^)은 요즘 조금씩 수정되어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요. 또 다른 가설로는 다중우주 가설이 있는데, 이건 측정이 일어나서 어느 파동함수가 붕괴한다면 그 때 세계가 나뉘어진다는 이론입니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이것들은 언제까지나 해석의 문제이고, 과학의 영역은 아니라는 것이겠지요 ^^;;

    그런데 무엇을 쓰려고 했더라...-_-;;;

    • BlogIcon buckshot | 2009/04/25 17:54 | PERMALINK | EDIT/DEL

      갑자기 작년에 적었던 댓글 하나가 생각납니다. ^^
      http://read-lead.com/blog/654#comment23900

      갑자기 노마디즘(이진경 저)의 아래 구절이 생각납니다. 들뢰즈는 철학사를 뒤적이며 마음이 끌리는 철학자를 만나면 그를 뒤에서 덮쳐 계간을 했다고 합니다. 즉 어떤 철학자를 뒤에서 덮쳐서 사생아를 만들어내는 것이 자기가 철학사를 가지고 사유하는 방식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들뢰즈는 니체에 대해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니체의 뒤를 덮쳐 사생아를 만들려고 보니까, 어느새 니체가 자신을 덮치고 있더라" 그만큼 자신의 사유에서 니체의 영향이 지대했다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겠지요.


      아인슈타인도 들뢰즈와 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잘 덮치고 뭔가를 새롭게 생성해내는 능력이 점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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