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지각력 = 공간 창출력 :: 2011/08/15 00:05

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중혁 외 지음/문학동네

김중혁의 단편소설 1F/B1에서 아래 글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1F/B1의 표지판 아래에 비밀통로가 있었다. 비밀관리실은 숫자로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1층과 지하 1층 사이의 어떤 곳이었고, 슬래시(/)처럼 아무도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는 아주 얇은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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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갈 때마다 저는 늘 층을 알리는 작은 표지판을 봅니다. 표지판은 층과 층 사이에 있습니다. 1층과 2층 사이, 2층과 3층 사이, 3층과 4층 사이... 저는 그 표지판들을 볼 때마다 우리(건물관리자)의 처지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특히 숫자와 숫자 사이에 있는 슬래시 기호(/)를 볼 때마다 우리의 처지가 딱 저렇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층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우리는 언제나 끼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곳도 저곳도 아닌, 그저 사이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하1층과 1층 사이, 1층과 2층, 2층과 3층...  층과 층 사이에 우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슬래시가 없어진다면 사람들은 엄청난 혼란을 겪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주 미미한 존재들이지만 꼭 필요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누군가 저의 직업을 물어본다면 저는 자랑스럽게 슬래시 매니저 (Slash Manager)라고 얘기할 것입니다.

사이, 얇은 공간, 그 얇은 공간의 중요성.
흐릿하게만 느꼈던 무언가에 주목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상상력을 불어 넣는 능력
단서, 주목, 의미, 상상의 흐름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생성할 수 있는지.

모든 것은 결국 공간의 문제이다.
공간 속에서 틈을 발견하고 틈 속에 내재한 관계와 관계의 가능성을 파헤치는 과정
나의 블로깅도 1F와 B1 사이에 존재하는 슬래쉬(/)의 의미를 파헤치는 과정이겠구나란 생각이 든다.

의미있는 뭔가를 하기 위해 헤매는 것보다는 이미 하고 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 자체가 강력한 수동태적 상황 아니겠는가? 인간은 자신이 뭔가를 능동적으로 한다는 착각을 하기 마련이지만 결국 수많은 외부 입력값에 의해 끊임없이 조종당하는 삶의 에이전트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이 정말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자신의 삶을 관조하면서 그것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 정도가 아닐까? ^^

(시)공간 좌표 상을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인간.
(시)공간 좌표 상에 펼쳐지는 나의 이동경로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릴 수 있는가?
뛰어난 공간 지각력, 공간 해석력을 접할 때 나는 설레인다.
공간 지각력/해석력은 곧 공간 창출력이다.
김중혁의 1F/B1은 나에게 공간적 설레임을 선사하는 소설이다.



PS.  관련 포스트
시공간을 빛의 속도로 이동한다는 것.
나, 시공간, 해체
휘발, 알고리즘
시간,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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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

    Tracked from toms s | 2013/06/13 11:17 | DEL

    What's up, yeah this piece of writing Read & Lead - 공간 지각력 = 공간 창출력 is really pleasant and I have learned lot of things from it on the topic of blogging. thanks.

  • BlogIcon todaeg | 2011/08/16 19:54 | PERMALINK | EDIT/DEL | REPLY

    호호호..
    잘 지내셨죠?^^
    토마토 따느라 바쁜 척 하던 토댁입니다..^^;;
    따님은 첫 방학을 어찌 보내고 계신지??
    이제 지난 글들 차곡차곡 읽어보라구요..
    근디 글이 너므 많아요..흑 ㅋㅋ

    오늘도 즐거운 날 되세요~~

    • BlogIcon buckshot | 2011/08/17 21:55 | PERMALINK | EDIT/DEL

      토댁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당~

      저의 지나간 글은 과감히 패쓰해주세요~

      즐거운 한 주 되시구여~

  • 마리 | 2011/12/24 08:39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해리포터가 생각나네요 ㅎㅎ

    • BlogIcon buckshot | 2011/12/24 12:59 | PERMALINK | EDIT/DEL

      시간,공간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인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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