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노예: 이기고 웃는 노예, 지고 우는 노예 :: 2013/01/28 00:08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부/권력/지위/명예와 같은 속물적 덕목으로부터 자유롭기는 매우 힘들다. 아니 심지어는 그런 속물적 스펙에 인생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왜 사람들은 자신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 유전자에 깊게 새겨진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두려움은 원래 생명 위협 상황에서 가치를 발휘하는 기제인데 문명이 발전하면서 수시로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이 현저하게 줄어든 지금도 '두려움'은 인간 사회를 강하게 압박하며 인간들을 두려움 숭배 로봇으로 만들고 있는 듯하다. 만약 인간의 마음 속에 두려움이 없다면,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 시선에 합당한 스펙을 갖추기 위해 자신의 인생 전체를 던지듯 로봇처럼 살아가는 행태가 과연 이렇게 만연했을까?

부,권력,지위,명예는 유한 자원이라서 그걸 남보다 많이 획득하려는 경쟁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마치 속물적 덕목을 남보다 더 많이 획득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마냥 인간은 인생 전체를 걸고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대장정에서 헤어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광경은 정말 우주적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이런 개그적 대서사시를 누가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는 것인지 정말 이 상황을 주재한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보면 볼수록 놀랍고 그 안을 살아가는 내 자신이 놀랍고 이런 체계가 굴러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초대형 블록버스터 판타지 무비가 아닐까 싶다. (일상이 이렇듯 거대한 영화관인데 뭐 하러 극장에 가는가? ^^)

무엇보다도 이런 놀라운 상황을 가능케 하는 동력인 '두려움'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두려움'은 정말 대단한 힘을 갖고 있다. 자신을 망각하고 오직 자신을 상품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상품 가치를 드높이기 위한 무한 경쟁 상황 속에 자신을 내던지는 인간소외적 행위, 몰지각한 행위를 당연시하며 인간을 살아가게 하다니, 도대체 두려움 너는 인간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

경쟁지상주의 사회가 낳은 가관을 보면서 두려움에 최상급 찬사를 보내지만, 이 게임에서의 승자는 두려움 하나라는 게 참 안타깝다. 무한경쟁에 뛰어든 수많은 인간들은 두려움이라는 유일한 승자의 발 밑에 엎드려 두려움을 경배하고 두려움에 유린당하는 비참한 패배자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을 두려움은 계속 즐겨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데. 경배를 드리면 경배 드린 만큼 그에 합당한 대우나 케어를 받아야 하는데, 왜 인간은 두려움에 인생 전체를 건 경배를 드리고 두려움으로부터 잔인한 희롱을 당하는 것일까?

경쟁의 결과는 승리도 아니고 패배도 아니다.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순간, 나는 나 자신을 일개 범용품으로 전락시키는 것이고 범용품으로 살아가는 한 승리도 패배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남보다 돈을 많이 벌고 남보다 더 좋은 직장에 다니고 남보다 더 좋은 집에 살고 남보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고 남보다 더 많은 존경을 받고...  아뿔싸~ 여기엔 '나'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타인만 존재한다. 이게 나 자신을 위한 삶일까? 아니면 남을 위한 삶일까?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이타적인 존재였을까? 그리고 이게 과연 이타적 삶일까? ^^  

경쟁의 결과는 인간소외이고 완벽한 범용품으로의 전락이다. 그게 경쟁의 본질이다. 경쟁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 경쟁에서 중요시 하는 스펙에 목을 매며 살아가는 일상 속엔 공허함만이 가득하다. 설사 거기서 좋은(?) 성과를 얻었다고 해도 곧 또 다른 갈증이 찾아오고 근원적 두려움은 점점 나의 목을 조르며 나를 더욱 강하게 압박해 들어올 뿐이다.

결국 "내가 중요시 하는 덕목 속에 내가 존재하기는 하는 건가?"란 질문을 던지는 게 중요하고 그 질문 속에 내가 없고 온통 타인이 가득하다면 나는 뭔가 잘못 살아가고 있다는 인정을 해야 할 것이다. 남이 정의한 성공 패러다임, 남이 정의한 행복 패러다임의 바다 속을 해면동물처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두려움이 이끄는 삶. 두려움을 경배하고 두려움으로부터 유린 당하는 삶. 그리고 그걸 인지 못하는 삶. 참 허무한 거다. ^^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흘러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 올 때, 아래와 같이 자문해 보자.

"나는 살아가면서 경쟁 말고 한 게 뭐가 있는가?" 

이 질문에 오직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게임만을 했다라는 답이 나온다면 그건 정말 비참한 것이다. 왜? 경쟁은 이겨도 지는 게임이니까. 왜 지는 게임을 하는가? 왜 유일한 승자인 두려움에게 퍼주기만 하는가? 왜 승리와 패배만 존재하는 유아적이고 치기 어린 이분법 논리가 지배하는 저급한 프레임에서 평생을 보내는가?  과자 하나 주면 헤헤거리고 과자 안 주면 앙앙 우는 유아. 그게 경쟁 프레임 속에 갇힌 인간의 모습인 건데.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과자 하나 얻어 먹으려고 떼쓰고 헤헤거리고 앙앙 우는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다니. 인간이 그렇게 병신 같은 존재인 건가? 두려움을 숭배하고 두려움에 유린당하는 인간. 그건 노예다.

경쟁에서 이기고 웃는 노예, 경쟁에서 지고 우는 노예. 노예들이 가득한 세상.  나 자신이 노예임을 일단 인지라도 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언젠가는 노예스런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정말 나 자신을 아끼고 나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블로깅을 하면서, 경쟁에서 이기고 웃는 노예들과 경쟁에서 지고 우는 노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경쟁은 애니팡, 드래곤플라이트, 다함께차차차를 하듯 걍 가볍게 즐기고 말면 되는 게임이고 그 게임의 유일한 승자는 두려움인 것인데 경쟁의 결과를 놓고 왜 웃고 우는지 난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렇게 두려움의 지배력을 키워주기 위해 웃고 우는 에너지를 다 허비하면 정작 나를 위한 에너지를 어떻게 수급할 것인지. 인간은 정녕 두려움의 힘을 키워주기 위해 태어났고 한 평생을 오직 두려움만 경배하며 살아가야 하는 건가?

블로깅을 하면서 경쟁의 본질을 볼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다행스럽다.
블로깅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개그적 스펙터클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도 못한 채
난 지금도 여전히 경쟁 노예로 살아가고 있었을 테니까. ^^



PS. 관련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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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3/01/28 19:3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사실 두려움은 자본주의 사회 뿐 아니라 공산 사회, 독재 사회, 유목 사회, 봉건 사회 등 체제와 시대를 초월해서 늘 인간의 생존을 위협해온 '존재'인 거죠. 애초에 신의 관념이 생긴 이유도 두려움 때문일텐데, 신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현대 문화권에서 이제 두려움은 자기 자체를 신격화함으로서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경쟁에서 이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진짜, 경쟁 시스템을 이기는 게 과제인 듯 합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3/01/28 20:45 | PERMALINK | EDIT/DEL

      제가 너저분하게 늘어놓은 글자들의 어지러움을 딱 한 문장으로 요약해 주시네요. ^^

      "경쟁에서 이기는 게 문제가 아니라 경쟁 시스템을 이기는 게 과제이다."

      존경스럽습니다. 넘 감사드리고 싶구요~

  • 휘리릭킴 | 2013/03/11 15:46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그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열등감과 오기로 쓰일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쟁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타인을 넘어서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실제 적은 우리보다 더 커 보일 때가 많으니까요..특히 저 같은 경우는 말이죠..^^;;
    또 한편으로는 그 벅샷님이 말한 그 두려움을 무작정 이기려만 하다보니, 또 정작 타인이 보는 나와 내 자신이 보는 나와의 거리감도 생기고 있는 중입니다.
    하...정답이 없는 것 같아요.ㅎㅎ

    • BlogIcon buckshot | 2013/03/11 19:50 | PERMALINK | EDIT/DEL

      두려움은 인간유전자에 깊게 새겨진 코드이기도 하고 인간소외의 경쟁시스템을 서포트하는 거대한 동력이기도 해서 감히 제압하기는 쉽지 않은 상대입니다.

      하지만, 매번 두려움에 맥없이 제압당하기 보다는 아주 가끔씩이라도 두려움을 상대로 멋진 저항, 또는 가벼운 승리를 거두는 경험을 지속하게 된다면 인간의 삶은 보다 더 풍요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블로깅은 두려움 희롱 놀이를 지속하기 위한 좋은 시공간이겠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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