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힐, 알고리즘 :: 2009/02/20 00:00

난 하이힐을 유심히 본 적이 거의 없다. 구두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런데, 스포츠카를 베이스로 디자인된 람보르기니 하이힐은 눈에 좀 들어오는 편이다.
그리고 13년 전 시절이 떠오른다.



그 당시 나는 직장 2년 차였고 결혼을 7년 앞둔 미혼이었다. 어느 날 직장 친구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하게 되었는데 상대 여성의 키가 무려 174cm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순간 공포감이 몰려 왔다. 내 키는 딱 170cm이었기에..  결국 난 결단을 내렸다. 퇴근 후 바로 명동으로 직행했다. 슈즈샵에 들어가서 키높이 구두를 구입했다. 굽이 12cm였다. 170이었던 나는 180에 육박하는 장신남으로 변신했다. 구두를 신고 매장을 나서는데 순간 현기증이 몰려 오면서 휘~청~ 했다. 어색함과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집으로 돌아 왔고 다음날 나는 당당한 자신감을 갖고 회사로 출근했다. 몰라보게 커진 나의 키에 회사동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난 며칠 후 당당하게 소개팅에 나섰다. 그 후 약 3개월간 무리한 만남을 지속하다 무릎이 다 나가는 고통을 겪은 끝에 키높이 구두와 결별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신발을 신는 동안엔 다른 내가 된 느낌을 갖고 변화된 신체가 주는 보상감을 뇌로 충분히 전달 받을 수 있었다. 절대 신발 벗고 들어가는 음식점엔 가지 않았던 그 당시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참 우습다. ^^


바야흐로 슈즈의 전성기인 것 같다. 슈어홀릭 바람이 점점 거세지면서 여성 액세서리의 대명사인 핸드백은 이제 구두를 경계하기에 이른 모습이다. 자동차가 남성 욕망의 상징이라면 구두는 여성 로망의 상징이다. 하이힐은 높이에 대한 꾸준한 천착을 통해 이제 '킬힐(Kill Heels)' 시대를 열고 있다. 죽이는 높이의 킬힐은 디자인을 더욱 날카롭게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슈어홀릭들에게 높이로 인한 고통과 매혹을 통한 환상을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킬힐은 착용자를 변화시킨다. 킬힐은 인간 욕망의 확장이다. 킬힐을 신는 순간, 걸음걸이가 바뀌고 몸짓이 달라지고 자존감은 특별해진다. 신체의 변화가 일어난 것과 같은 효과이다. 고통과 쾌락의 인터페이스에 킬힐이 존재한다.  무릎만 안 나갔으면 난 지금도 키높이 구두를 신고 있을지도. ^^

 
PS.
Two Models Fall, Many Stumble at Prada
2008년 9월, 런웨이에서 18cm 킬힐을 신고 나온 모델이 넘어지고 있다. (1분48초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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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션 모델과 용산 참사

    Tracked from Crete의나라사랑_2009년글 | 2009/02/20 03:15 | DEL

    절벽 위에 선 패션 모델와 대한민국의 공권력 제가 사는 텍사스에는 요즘 독감이 유행입니다. 특히나 아이들이 많이 걸리는데 일단 걸리면 중이염이나 비후염으로 진행이 많이 됩니다. 저희..

  • BlogIcon CRete | 2009/02/20 03:1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키 높이 신발을 시도해 보셨군요. ^_^
    저도 최근에 하이힐의 도전(?)에 응전하는 모델들에 대한 글을 하나 쓴 적이 있죠. 트랙백을 달아 봅니다. 모델일이 생각보다 고되더군요. 하긴 어떤 분야든지 정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뭔가 특별한 점이 있어야 겠지만 말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9/02/20 09:05 | PERMALINK | EDIT/DEL

      Crete님,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

      귀한 트랙백 잘 보았구요. 모델들이 킬힐을 신고 워킹하는 것이 맨발로 절벽을 등지고 내려오는 모습과 유사하다는 말씀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프로로 살아간다는 것은 절벽을 맨발로 등지고 내려오는 것이다. 이렇게 명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귀한 글 정말 감사합니다. ^^

  • BlogIcon egoing | 2009/02/21 15:1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우하하하하하하
    buckshot님은 정말 살신성인의 유머감각을 지니고 계십니다.
    웃음을 넘어서 인간적인 존경이 느껴집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9/02/21 21:13 | PERMALINK | EDIT/DEL

      어익후.. 가벼운 촌극에 불과한 에피소드를 좋게 봐주시니.. 민망합니다~ ^^

  • BlogIcon 소중한시간 | 2009/02/21 16:51 | PERMALINK | EDIT/DEL | REPLY

    ㅎㅎㅎ; 상당히 재밌는 추억을 가지고 계시네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9/02/21 21:14 | PERMALINK | EDIT/DEL

      가끔 그 당시 기억이 떠오르면 속으로 웃게 됩니다. 참 무모했던 나날들이었습니다. ^^

  • BlogIcon Donnie | 2009/02/21 20:5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사진은 웬지 변신해서 공중으로 날아갈 것 같네요. :D

    • BlogIcon buckshot | 2009/02/21 21:15 | PERMALINK | EDIT/DEL

      말그래도 킬힐입니다. 정말 저거 신으면 어지럽게 하늘 높이 날아오를 것 같습니다. ^^

  • BlogIcon 데굴대굴 | 2009/02/22 18:3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도 주변에서 키높이를 신어보는게 어떠냐고들 하는데...... 무릎건강을 생각하면 피해야겠네요....
    (그냥.. 허리를 피고 다니겠습니다. -_-)

  • BlogIcon | 2009/02/23 12:3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하하하 ㅠ_ ㅠ 웃으면 안되는데
    남자 키높이구두도 12cm 나 되는게 있군요.
    한번 착용해 보고 싶습니다. 제 주위에는 키큰 사람들이 많아서요(농구부친구들..전 포인트가드..)
    패션모델의 모습은 안타깝습니다.
    왠지 인간 욕망의 상징인것 같아서...
    높은 구두, 삐쩍마른 모델, 진한 화장품, 비싼 명품옷들, 유명한 관객들..
    너무 극단적인...;

    • BlogIcon buckshot | 2009/02/23 22:51 | PERMALINK | EDIT/DEL

      헉.. 12cm는 자칫 무릎 나갈 위험 있구여. 적절한 높이를 선정하셔야 합니당~ ^^

      요즘은 인간 욕망의 상징으로 보이는 것들이 많아지는 느낌입니다. 인간의 욕망을 자유롭게 하는 장치들이 거대해지고 있어서인지.. 하여튼 욕망에 대한 생각은 여러가지 추가적인 생각을 낳게 합니다. 쉽게 정리할 주제는 아니지만 생각의 끈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욕심이 납니다.. ^^

  • BlogIcon SuJae | 2009/02/25 23:00 | PERMALINK | EDIT/DEL | REPLY

    가벼운 마음으로 오랫만에 찾아뵈었더니 온통 알고리즘이...
    아예 날을 잡아서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찬찬히 읽어봐야겠습니다^^;
    구독자 2000!! 제 일주일치 방문자에 필적하네요^^ 축하드립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9/02/25 23:15 | PERMALINK | EDIT/DEL

      SuJae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

      어느덧 알고리즘 포스트가 50회를 바라보고 있네요. 첨엔 몇 번 하다 그만하겠지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길어지고 있네여~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당. ^^

  • Monange | 2009/03/12 20:3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의 경우 하이힐을 신으면 옷차림도 달라지고 걸음걸이도 달라지고 움직임도 달라지죠.
    격을 갖추게 되는거 같아요. 자신감이 표출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남자들....키보다는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자신감과 당당함이 더 매력적이랍니다.
    키높이구두까지 신으셔야 했던 그 상황...그 노력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9/03/13 08:52 | PERMALINK | EDIT/DEL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자신감과 당당함..
      Monange님께서 제가 추구해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고 계십니다.
      이 포스트를 올린 보람이 있네요. 넘 감사합니다. ^^

  • BlogIcon 섹시고니 | 2009/03/30 11:0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어쨌든 상대 여성을 올려다보는 건 좀 암울한 기분이 드는건 사실. ㅎ

    덧) 제 댓글이 쓰레기통에 하나 들어가 있을 듯.. ㅎ
    덧2) 제게 있어서 블로그는 2가지 :: 저를 차단한 블로그와 그렇지 않은 블로그 // ㅎㅎ //
    덧3) 항상 재밌게 글 보고 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9/03/30 21:39 | PERMALINK | EDIT/DEL

      정말요. 특히 저같은 탈모 남성은 가급적이면 누가 절 내려다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덧) 어, 정말 하나 들어가 있네요..

      덧2) 의도하지 않은 차단도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제 블로그도 그럴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는건지 잘 모르겠어요..

      덧3) 섹시고니님께서 재미있게 보아주시니 더욱 블로깅을 열심히 해야 할 이유가 생기네요. 힘을 주시는 격려, 정말 감사합니다. ^^

  • BlogIcon 아이날다 | 2009/03/30 17:28 | PERMALINK | EDIT/DEL | REPLY

    남성화도 킬힐에 견줄만한 녀석이 있는건 첨 알았어요~~오호!!
    저또한 젊은? 어린? 시절, 12cm를 즐겨 이용했지만
    어느덧 유행이 흐르고 흘러 낮은 플랫슈즈에 한참 적응하고 있던 터에,
    다시 찾아온 킬힐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답니다. 무릎뿐 아니라 발목까지 무리가 가는 터에,
    킬힐 한번 신고 나면 플랫슈즈 3일은 신어줘야 피곤이 풀린답니다.
    그래도 줄기차게 제가 힐을 찾게 되는건 아마도,,,,
    자기 만족에, 왠지 모르게 샘솟는 혼자만의 자신감때문이겠죠?~~^^

    • BlogIcon buckshot | 2009/03/30 22:08 | PERMALINK | EDIT/DEL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무릎 나가도록 그걸 신고 다녔더 그 시절이 그립고 경이스럽습니다. ^^

      요즘은 킬힐과 플랫슈즈가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둘 다 묘미가 있는 것 같구요. 블로그 음악이 멋지네요. (Le Breakfast Club De Paris)

      방문해 주시고 귀한 댓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0 | 2009/04/27 15:01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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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 rex | 2009/08/20 09:07 | PERMALINK | EDIT/DEL | REPLY

    12cm 나 되는 남자 키높이 구두가 가능하긴 한건가요? o.o
    그 당시 바지는 모두 새로 사셨는지... 기존의 바지는 모두 칠보바지가 됐을텐데.... ㅎㅎ

    • BlogIcon buckshot | 2009/08/20 09:12 | PERMALINK | EDIT/DEL

      원체 기장이 긴 바지를 주로 입고 다녔는데도 불구하고 기장이 짧아 보여서 고전했던 기억이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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