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알고리즘 :: 2008/11/17 00:07

집사람은 초등학교 교사다. 현재 육아,집안일을 하나도 도와주지 않는 무책임한 남편 때문에 할 수 없이 휴직 중이며 내년 3월에 복직 예정이다. 딸아이는 다섯 살 귀염둥이 꼬마다. 난 누워있는 게으름뱅이 뚱보 흑인 뿡뿡이 아빠다. 최근에 우리 가족은 집사람이 다니는 학교 바로 옆으로 이사했다.


어느 날
집사람은 딸아이와 함께 동네 놀이터에 가서 그네를 타려고 한다.

근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2명이 그네 2개를 모두 점유하고 있다.

집사람이 아이들에게 다가가 얘기한다.
"얘들아, 너희들 그네 오랫동안 탄 것 같은데 자리 하나만 내어줄 수 있니?"

아이들은 들은 척도 안하고 계속 그네를 탄다.
집사람이 또 얘기한다.  그래도 애들은 묵묵부답이다.

집사람, 열 받았다.
"야, 너희들 어느 학교 다녀?"

아이들은 집사람을 시큰둥하게 쳐다보며 대답한다.
"모모 초등학교요."

집사람,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말한다.
"야, 나 모모 초등학교 선생이거든, 너희들 몇 학년이니?"

아이들, 갑자기 얼굴에 스며든 공포감이 역력하다.
"저.. 1학년이요..."

집사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그래? 나 내년에 2학년 맡을 건데..  너희들 나랑 만날 수도 있겠구나~ 음~호~호~호~"
(솔직히 2학년 맡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

아이들, 급 다소곳해지며 조용히 그네에서 일어난다.
"예, 선생님..  저희.. 갈..께..요.."  휘리릭~



PS.
집사람은 최근에 이 얘길 나한테 해주면서 다소 기가 막혀 했다.
딸아이 그네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유치해 질 줄은 몰랐다며...

그 얘기 듣고 난 많이 웃었다.
그리고 집사람이 참 예쁘고 귀엽다고 생각했다..

자식.. 부모를 확 변화시키는 강력한 알고리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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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mm | 2008/11/17 11:47 | PERMALINK | EDIT/DEL | REPLY

    -_- 대한민국 권위주의의 문제와 공교육의 문제를 제대로 보여주시네요.
    정말 짜증납니다. 저런 교사에게 자녀 교육을 맡겨야 하다니.

    훈훈한 에피소드 정도로 생각하고 글을 쓰셨나보지요? 전혀...

    • BlogIcon buckshot | 2008/11/17 12:00 | PERMALINK | EDIT/DEL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제 생각이 짧았나 봅니다.. 기분좋게 출발해야 할 월요일 아침에 불쾌감을 드리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 BlogIcon 돌탱크 | 2008/11/17 12:1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좋은 블로그를 발견했다고 생각한 후 RSS로 등록해 놓고 매일 찾아와서 보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건 처음이네요. ^^ 와이프 되시는 분 정말 귀여우시네요. 부럽습니다. ^^

    위에 분은 글쎄요. 부정적으로 볼만한 소지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살면서 생기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에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시는 것은 아닌지.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혼낸 것도 아니고. 아래 정중한 사과에 제가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네요. 너무 마음 상하지 마시고 앞으로도 좋은 글 재미난 글 많이 올려주세요. ^^

    • BlogIcon buckshot | 2008/11/17 22:26 | PERMALINK | EDIT/DEL

      돌탱크님,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독까지 해주시니 넘 감사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계속 노력하면서 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 Playing | 2008/11/17 17:1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요 ~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니 윗 'Hmm'님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되진 않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모두 권위주의로 본다면 얼마나 끔찍한 세상일까요?

    단지 양보하면서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를 점유하려는 아이들'과
    '선생'이라는 이름값보다 '왜 함께 돌아가면서 즐기자'라는 것을 주지시킬 방법을 몰랐던 어른의 알콩달콩한 에피소드라고 생각되네요 ~ _~

    그 아이들이 앞으로 선생이라는 이름에 기죽지 않길 바라고..
    앞으로 우리 모두가 특정 직위나 이름값보다 같은 자식을 둔 어른으로서 행동하길 바랍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11/17 22:27 | PERMALINK | EDIT/DEL

      여유있는 마음으로 놀이를 즐겨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귀한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

  • BlogIcon 반군 | 2008/11/17 20:1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도 권위주위라고는 보이지 않는군요. 아이들이 울도록 화를 낸 것도 아니고 잠깐 내신 것(?) 같은데요. 아무튼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8/11/17 22:28 | PERMALINK | EDIT/DEL

      반군님, 많이 부족한 글을 귀한 시간 내어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 BlogIcon 달팽가족 | 2008/11/17 22:4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사실 권위주의라고 보면 권위주의일수도 있겠지만 이정도는 귀여운 것 같은데요.^^ 그리고 아이들과 장시간 있다보면 이성적이라고 자부했던 저의 모습은 사라지고, 유치해지는 것도 공감되구요. ㅎㅎㅎ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셔도 될 것 같은데... 선생님이라고 스르륵~ 사라지는 꼬맹이 1학년 녀석들도 너무 귀여운데요. 아직 순수한 것 같아요. 요새는 고학년만 되어도 선생님 무시하는 것 같던데 말이예요.

    • BlogIcon buckshot | 2008/11/17 22:45 | PERMALINK | EDIT/DEL

      달팽가족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아이들과 동화되는 느낌은 저도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

  • BlogIcon woo | 2008/11/27 18:4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도 「지식」으로 착각하고 들어왔는데,오래간만에 웃었습니다.
    나중에 부인생기면 써먹으라고 해야겠네요ㅎㅎ
    종종 들르겠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11/28 08:50 | PERMALINK | EDIT/DEL

      woo님,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제목 낚시가 된 듯한 느낌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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