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알고리즘 :: 2008/12/0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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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 이란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자기 중심적이고 냉소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TV 기상 통보관인 빌 머레이는 매년 2월 2일 개최되는 성촉절(Groundhog Day)을 취재하기 위해 앤디 멕도웰 PD와 함께 펜실바니아 펑추니아 마을로 간다. 취재를 마친 다음 날 아침, 호텔에서 눈을 뜬 빌 머레이는 어제와 똑같은 라디오 멘트를 듣게 되고, 축제 준비로 또 다시 부산한 마을의 모습을 보고 놀라 자빠진다. 자신만 경험하게 되는 시간의 반복 속에서 빌 머레이는 장난을 시작한다. 여자를 유혹하기도 하고 돈가방을 훔치기도 하고..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계속되는 반복을 견디다 못해 빌 머레이는 절망 속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다음날이면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말끔하게 부활하여 여지 없이 Groundhog Day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양태로 반복되는 지겹디 지겨운 일상.. 어쩌면 빌 머레이가 겪었던 똑같은 날의 절망적 반복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느낌인지도 모른다.

GROUNDHOG DAY TRAILER



음.. 갑자기 아래 포스트 2개가 생각난다.
Birth & Death - 생명은 동적 평형의 흐름 그 자체이다  (2008.7.11)
세포와 세포 사이 (2008.10.27)

반복된다는 것..
죽음과 탄생의 끝없는 순환에 견주어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된다는 것.
내가 죽어서 다음날 내 유전자를 물려받은 내 자손이 태어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오늘 내가 갖고 있던 나의 유전자를 물려 받아 내일 태어나는 내 자손은
주어진 환경 속을 살아가면서 내가 했던 방식대로 살아갈 수도 있고
내가 했던 방식을 발전적으로 변형시키면서 더 나은 삶의 모습을 띨 수도 있다.

진화한다는 것..
반복의 고리 속에서 미세한 차이가 발생할 때 진화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미세한 차이가 첨에 발생할 땐 정말 말 그대로 미미한 차이에 그치겠으나
차이가 쌓이고 쌓이면, 거대한 차이로 발현될 수 있다.
초기조건의 차이에 의한 회귀적 속성이 무수히 중첩되면 나비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정보수용의 한계를 회피하기 위해 가급적이면 정보를 단순하게 환원시켜 저장하고 실체가 아닌 환원된 정보를 실체라고 믿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이 '일상의 반복'이란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지 실제로 일상의 반복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똑같은 일상이 반복된다는 허상과 착각이 있을 뿐인지도. 어제의 일상과 오늘의 일상은 분명 다르다. 어설픈 패턴화의 굴레를 벗고 제대로 현실을 직시한다면 분명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저자가 얘기했듯이 수많은 원자가 생명체 내부로 흘러 들어왔다가 생명체 내부를 흐르며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에  6개월 후의 나는 6개월 전의 나와는 분자적 차원에선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또한, 나를 둘러싼 일상(日常)도 사실상 日常이 아닌 역동적인 변이를 거듭하고 있는 동적 평형체라고 봐야 한다. 단지 내가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어제와 오늘의 차이를 얼마나 극적으로 느낄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런 차이를 느끼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바로 놀이라고 생각한다.  질서 속에 무질서가 내재하고 있듯이 반복으로 보이는 현상 속에 무수히 많은 차이들이 숨어 있다. 인간의 인지체계의 한계로 인해 패턴화되고 단순하게만 보이는 일상 아닌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놀이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반복의 링 속에서 끊임없이 놀이를 할 수 있다면 반복은 재미와 풍요를 생산(계산)해 내는 멋진 알고리즘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



PS.
최고의 블로깅 팁 - 즐기는 놈들은 못 말린다.
J준님의 포스트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
편하게 즐기며 자유롭게 하는 블로깅
블로깅은 최고의 놀이 플랫폼 중의 하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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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Tracked from Future Shaper ! | 2008/12/11 05:58 | DEL

    헬라어에는 시간을 뜻하는 두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입니다. 크로노스는 자연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말합니다. 해가 뜨고 해가 지면 하루가 지나고, 지구가..

  • BlogIcon 파아랑 | 2008/12/08 03:25 | PERMALINK | EDIT/DEL | REPLY

    포스트 잘 보았습니다.^^
    이 영화 어릴 때 봤던 기억이 나네요..(초딩때이군효 ;ㅁ;)

    링크 따라가서 본 J준님의 포스트를 봤을 때, 저는 홉스가 먼저 떠오르던데..ㅋ;
    벅샷님의 진화와 저의 진화는 다른 방향으로 열심히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즐거운 한 주 보내셔요~^^

    • BlogIcon buckshot | 2008/12/08 09:09 | PERMALINK | EDIT/DEL

      파아랑님, 좋은 아침입니다. ^^
      옛날에 재미있게 본 영화를 다시 떠올리며 포스팅을 하는 기분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파아랑님의 생각의 흐름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오늘 리서치에 대해 올려주신 예리한 포스트도 잘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릴께여. ^^

  • BlogIcon 토댁 | 2008/12/08 09:1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어제 토댁이 하는 놀이에 "택"이 걸렸답니다.
    어제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지금은 생각이 복잡한 상태이랍니당...
    간만에 토댁이가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구먼요..히히

    행복한 하루 되세요~~

    • BlogIcon buckshot | 2008/12/08 09:32 | PERMALINK | EDIT/DEL

      어떤 택이 걸려도 토댁님의 '놀이'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란 예상을 해봅니다. 아마 더 멋진 놀이를 위한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즐겁고 알찬 하루 되십시오. ^^

  • BlogIcon prsong | 2008/12/08 18:19 | PERMALINK | EDIT/DEL | REPLY

    블로깅은 최고의 놀이 플랫폼 중의 하나... -> 완전 공감 :D

    • BlogIcon buckshot | 2008/12/08 20:27 | PERMALINK | EDIT/DEL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 BlogIcon ZOOTY | 2008/12/08 18:42 | PERMALINK | EDIT/DEL | REPLY

    분석이 와우 !!
    저도 이 영화를 보고 재미있는 생각을 했었는데 !!
    결국 말씀하시는 내용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됩니다.
    반복되는 일상을 놀이로 전환하여 피아노를 프로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기억납니다.
    놀이가 아닐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렇게라도 피아노 배우는게 신선했었거든요 ^^
    하지만 현실은 반복적인 일상이라고 해도 꼭 해야만 하는 것들이 산재해 있으니 어렵죠 !!
    진정한 즐김이 없다면 말이죠 !!

    • BlogIcon buckshot | 2008/12/08 20:29 | PERMALINK | EDIT/DEL

      와.. Zooty님.. 제가 담에 써보고 싶은 포스트가 '달인'이란 주제였습니다. 반복에서 차이를 발견하는 놀이도 가치가 있지만, 반복 자체에서 얻어지는 선물 중의 하나가 '달인'의 경지인데 그 주제에 대해 함 써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Zooty님 말씀에 급공감합니다!!!

  • BlogIcon 쉐아르 | 2008/12/11 05:57 | PERMALINK | EDIT/DEL | REPLY

    매일 다가오는 하루 하루가 반복이 될지, 아니면 의미있는 날들이 될지는 선택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생각의 고삐를 놓는 순간 바로 의미없는 반복이 되어버린다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요. 연관된듯한 글을 하나 썼습니다. 오랜만에 트랙백 남깁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8/12/11 09:43 | PERMALINK | EDIT/DEL

      생각의 고삐.. 저에게 중요한 개념이 될 것 같습니다. 생각의 고삐를 놓으면 시간은 크로노스가 되어 하염없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생각의 고삐를 쥐고 크로노스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면 시간은 카이로스가 되어 내 옆에 머물러 주는...

      결국 주목/관찰/의미부여와 같은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해봅니다. 결국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주목하고 관찰하고 의미를 부여한 시간의 총합이 그 사람이 이 세상에 남긴 가치의 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귀한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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