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디즘을 읽다가 떠오른 예전 2개의 포스팅 :: 2007/09/07 00:02노마디즘의 아래 문구를 읽다가 화폐가 지배하는 상품세계에서는 기발하게 만들어진 어떤 새로운 상품이라도 얼마짜리 상품에 불과하다. 화폐라는 단일한 척도에 의해, 단지 양적 차이만 갖는 상품으로 동질화되고 만다. 전에 알지 못했던 아주 이질적인 것이 나타났을 때도 통상 우리가 아는 문명은 이를 다양성을 확장시키는 계기로 삼기보다는 기존에 존재하는 것 안에 갖다 놓음으로써 동질화하고 동일화하는 과정에 끌어들인다. 아메리카 인디언,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이질적인 삶의 방식을 자신들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문화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자신들의 문명 안에 들어올 일종의 과거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문명이란 이름으로 동질화하고 동일화하여 지상에서 제거해야 할 무엇으로 만들었다 예전에 쓴 아래 두 개 포스팅이 생각났다. 앞으론 들뢰즈의 리좀적 사유를 많이 시도해야 할 것 같다. 은연 중에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에 너무 많이 젖어 버린 것 같다.. 환원주의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중요한 걸 잃어버리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언 미래를 과거로 착각하기 까지 하니 나원참...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선생을 파괴하면서 배우는 학생
라다크 개방/개발 전의 라다크 주민들의 서방세계에 대한 반응은 이랬다.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하지 않단 말입니까?" "여긴 가난 같은 건 없어요." 하지만 1975년부터 마을에 대한 서구화가 시작되면서 반응은 이렇게 바뀐다. "당신들이 우리 라다크 사람들을 도와주었으면 좋겠어요. 우린 너무 가난해요." 더 편리하고 문명화된 생활을 하기 위해 자연을 개발했을 뿐인데 왜 라다크 사람들은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서구 문명에 비춰 열등한 문화로 정의되는 순간부터 일이 꼬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다크는 미개한 마을이 아니라 병들어가고 있는 서구적 기술 문명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오래된 미래 교과서였던 것이다. 결국 저자인 노르베리-호지는 서구적 개발에 반대하는 라다크 프로젝트를 발족 시켜 라다크가 잃어버린 예전의 지혜를 되찾도록 지원한다. 결국 라다크는 서구 문명의 어설픈 수입을 통해 자신 스스로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게된 셈이다. 우린 그동안 누구에게 배움을 얻고 실행해 왔는지. 우리도 라다크처럼 자신 스스로에게서 배움을 얻어야 할 때가 아닌지... 아무리 생각해도 서양은 동양을 파괴하면서 엄청 배우고 있는 혜택 받은 학생인 것 같다. [The Wind is My Mother] 인생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디언의 지혜, 자연은 인간을 용서하고 있다.
서구인들의 눈에 비친 인디언은 지상의 어떤 종족보다 동물에 가까웠다. 바람의 냄새를 맡고 새 소리를 듣고 나무를 만지고 냇물의 맛을 보며 불을 지피고 이상한 주문을 외우는 인디언들은 분명 자연과 대화를 나눌 줄 아는 마지막 종족이었는지도 모른다. 현대인들은 그런 인디언들에게서 자연과 대화하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 현대인들은 자연을 이용하고 파괴할 줄만 알지 자신의 삶을 지켜주는 자연의 가치와 자연의 언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인간을 자연은 계속 용서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계속 우리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선물들을 인간에게 제공하고 있다. 자연은 인간과 연결되어 있고 인간에게 지속적인 메세지를 보내고 있다. 인간은 그런 자연의 마음을 이젠..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406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