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혁신'에 해당되는 글 87건

읽고 상상하기 :: 2014/10/20 00:00

읽지 않고 상상하기는 말 그대로 상상하기이다.

읽고 상상한다면 어떤 양상이 펼쳐질까?

결국 읽은 것을 지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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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의 순간 :: 2014/08/13 00:03

사람은 매일 잠을 잔다.

사람은 매일 잠에서 깨어난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잠드는 것과 깨어나는 것에 대한 특별한 감이 없다.

잠에서 깨어난다는 것.

참 대단한 일인 것 같다.

수면을 통해 복잡했던 정보의 망이 의미 있는 리셋의 과정을 거친 후

전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이 왔다는 의미.

가장 극적인 리셋을 매일 하고 있으면서도 그걸 잘 인식하지 못하는 건

대단한 기회가 잠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엄청난 것들이 우리 일상 속에 얼마나 많이 숨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일상을 지루한 것으로만 선입견으로 단정해 버려서 그렇지

제대로 일상을 바라보면, 날카로운 눈으로 일상을 직시하면

일상은 거대한 신비와 엄청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내면서 우리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나는 매일 잠을 잔다.

나는 매일 잠에서 깨어난다.

눈을 감고 눈을 뜨고.

수시로 눈을 감고 눈을 뜨고.  그게 다 작은 리셋의 흐름 아닐까?

수시로 리셋을 하고 있었다. 나는.

리셋의 순간을 인지한 순간, 나는 나를 리셋한다. 의식적 리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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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게 편지쓰기 :: 2014/08/06 00:06

유명한 저자가 쓴 책을 읽은 후, 저자에게 편지를 써보자.

물론 편지가 저자에게 도달되긴 쉽지 않을 것이다.

도달된다고 해도 저자는 답장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적인 흐름이 예상된다고 해서 답장을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저자는 독자에게 결코 반응하지 않는다는 믿음에 반기를 들어보자.

답장을 쓴다는 건, 내가 읽은 모든 문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음을 각성하는 것이다.

텍스트는 읽기의 대상인 동시에 대화의 대상이기도 하다.

텍스트와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읽기는 쓰기가 되고

텍스트는 일방적으로 쓰여진 일방향 문서가 아니라 쌍방향 위키 문서로 변모하게 된다.

편지는 도달되고 수신자에게 읽힐 때만 목적을 달성하는 게 아니다.

편지는 작성되는 순간 이미 도달될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도달 가능성의 높고 낮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도달될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음이 핵심이다.

도달 가능성을 탄생시키면서 일방향성을 양방향성으로 전환시키는 것.

거기서 결의 변화가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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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ndy | 2014/08/07 20:45 | PERMALINK | EDIT/DEL | REPLY

    마음으로 품어 보았던 생각인지라 더 반가운 포스팅이에요. 도달될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음이 핵심이란 생각까진 미처 해보지 못했던 듯싶습니다. 작성되는 순간 지니게 될 도달 가능성! 이런 마인드로 시도해본다면 그 시도 자체가 엄청난 기쁨이자 '결의 변화'가 되겠네요. 스파클링 워터의 청량감 깃든 아이디어이자 글이에요. 감사합니다. Let's give it a shot! :D

    • BlogIcon buckshot | 2014/08/08 07:47 | PERMALINK | EDIT/DEL

      Give and Take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서 Just Give에만 충실하게 될 경우, 많은 것이 변하게 되는 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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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 2014/07/11 00:01

창의력은 노가다에서 나온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무수히 많은 평범함을 거부하는 과정 속에서 파생된다. 셀 수도 없이 많은 평범한 생각의 단초들이 뒷다리를 잡아대며 생각의 진전에 브레이크를 거는 집요한 방해 공작을 모두 뿌리치며 얻어낸 결실.

그건 엄청난 노가다 그 자체다.
노가다를 얼마나 처절하게 수행하는가?

천재적인 두뇌에서 한 방에 아이디어가 나오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창의적인 생각은 노가다에 준하는 ritual과 단련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그런 과정을 겪는 것 자체를 즐거움이라 생각하기에 노가다임에도 불구하고 노가다인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결국 어느 순간 아이디어가 수면 위로 사뿐하게 떠오르는 것 뿐이다.

내가 투입한 시간이 일상적인 수치 범주를 크게 벗어난 케이스가 있는가?
그게 없다면 생각은 창의적이지 못한 평범의 쳇바퀴를 분주하게 돌고만 있을 것이다.

투입은 정직하다. 소요 시간이 대답한다.
노가다 알고리즘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창의의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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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 제약 :: 2014/07/07 00:07

Quora에서 영어로 질문을 구성하기가 매우 힘겹다. 

영어 실력이 딸려서 문장 하나 작성하기가 그렇게 힘이 들 수가 없다.

그렇게 영어로 낑낑대며 문장을 작성해도 수많은 빨간펜질을 당하곤 한다.

난도질을 당하고 나서야 문장이 깔끔해진다. 

그런 굴욕을 반복적으로 겪다 보니
한글로 생각을 표현한다는 게 얼마나 수월한 건지 생생하게 감이 온다.

영어로 문장 구성하는 고통을 충분히 거친 후에
한글로 문장을 적는 경험.

정말 이렇게 짜릿할 수가..
이게 바로 기정지세인 듯. ^^


PS. 관련 포스트
기정,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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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독무 :: 2012/12/24 00:04

오프라인 상의 브레인스토밍은 다른 생각을 조합할 수 있다는 군무(群舞)의 장점은 있으나 나만의 생각을 깊이 있게 당당하게 표출할 수 있는 독무(獨舞)의 환경조성 능력은 떨어진다.

군무와 독무를 겸비한 군독무에서 창의와 혁신이 나오기 마련이다. 군독무를 즐긴다는 건 왁자지껄한 군무의 광장도 아닌, 고요하기 그지없는 골방도 아닌 광장이면서도 골방인 묘한 지점에서 생각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고요한 것처럼 보여서 얼마든지 혼자만의 생각을 전개하다가도 마음만 먹으면 자연스럽게 타인의 사고에 접속할 수 있는 군독무의 공간. 타인의 생각에 얼마든지 연결될 수 있는 상황에서 나만의 생각에 몰두할 수 있는 곳. 연결감을 견지한 채 고립의 향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 바로 그곳에서 창의/혁신이 생성된다.

온라인 상의 브레인스토밍은 창의/혁신의 효과적 방법이다. 혼자 사고하면서 나의 생각과 연결될 수 있는 다양한 생각과 스스럼 없이 대화하는 것. 우린 웹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그때마다 우린 의식하든 못하든 온라인 브레인스토밍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무심코 웹을 서핑하면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정보들은 모두 나에게 암묵적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고 그 신호에 대한 의식적 응답 여부에 상관 없이 나는 반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웹 자체가 연결의 장이기 때문에 웹을 유영하는 시간은 온라인 브레인스토밍이 작동되는 공간이 될 수 밖에 없다.  

웹이 세상을 덮어갈수록, 창의와 혁신은 일상이 될 수 밖에 없다. 내가 하는 웹 상의 모든 행위 속에 창의가 잠재하고 있음을 인지 못할 뿐이지 창의와 혁신은 항상 군독무 환경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고 그것을 인지하고 그것에 의식적 반응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의식이 무의식을 인지하고 무의식이 인식과 융합되는 과정 속에서 군독무는 본격 작동하기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행해지는 브레인스토밍 속에서 의식을 서서히 ON 상태로 바꿔보자. 의식 ON 상태에 진입한 상황에서의 온라인 환경은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이 아닌 심도 있는 군독무의 장인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소셜 네트워크와 창의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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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0:59 | DEL

    It amazing in support of me to have a website Read & Lead - 군독무, which is beneficial in support of my know-how. thanks admin

  • Tracked from toms sal | 2013/06/13 11:00 | DEL

    When I saw this web page %title% having amazing featured YouTube video clips, I decided to watch out these all video clips.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12/24 00:21 | PERMALINK | EDIT/DEL | REPLY

    맞아요. 어느 곳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힘. 어찌보면 그것은 뇌도, 웹도 아닌 '데이터들의 네트워크'에 속함으로서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시공간성이라고 할 수 있겠죠. 벅 선생님, 메리 크리스마스 ^^

    • BlogIcon buckshot | 2012/12/24 07:09 | PERMALINK | EDIT/DEL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보내주시는 댓글이 저의 또 다른 생각의 원천 소스가 되어주시는 느낌입니다. 즐거운 클스마스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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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세터 :: 2012/12/19 00:09

남들이 다 보는 영화
남들이 다 듣는 음악
남들이 다 사는 상품
남들이 다 이용하는 서비스
남들이 다 가는 장소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나도 하는 떼소비 속에는 대중 속에 편입되었다는 안도감이 깃들어 있는 한 편, 대중 속에서 나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는 존재흐릿감이 존재한다. 나만의 취향, 나만의 스타일을 갈고 닦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어리버리 떼소비의 거대한 군무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쉽다.

나만 보는 영화, 나만 듣는 음악, 나만 사는 상품, 나만 이용하는 서비스, 나만 가는 장소.

나만 소비할 수 있는 뭔가가 많이 있다면 나는 나를 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남들과 다른 나가 되기 위해선 내 안에 '다름'을 향한 지향이 있어야 하고 내 밖에 나의 '다름' 지향을 충족시켜줄 대상이 있어야 한다. 인디영화, 인디음악, 인디상품, 인디서비스, 인디장소,.. 대상의 인디화, 인디의 다변화가 일어나면 날수록 나는 '다름'을 다채롭게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인디 놀이를 하면 떼소비에 젖어 있던 무뎌진 감각세포가 '나' 지향적으로 다듬어지게 된다.  독자적 소비, 주도적 소비를 하는 자들이 전개하는 인디 놀이 속에는 트렌드세팅의 단초가 숨어 있기 마련이다. 떼소비를 겨냥한 공장생산 상품 속에는 영혼이 없다. 영혼이 없는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의 몸짓엔 영혼이 없다. 트렌드세팅은 이제 더 이상 top down 방식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다름'을 추구하는 수많은 인디 소비자들, 인디 퍼포머들의 몸짓 속에서 트렌드세팅이 얼마든지 생성될 수 있다. 그들은 공장생산의 덧없음에서 멀어져 있는 자들이다. 공장생산 메커니즘에 중독된 떼소비 군무와 거리를 분명히 하고 나만의 사고/행동/소비를 하는 인디 피플들의 합이 진정한 트렌드세터 집단인 것이다.

쏟아지는 공장생산 상품/서비스의 유혹에서 온전히 자유롭긴 어렵다. 하지만, 떼소비에만 젖어 살아가는 소비 봇으로만 살아가기엔 인생이 아깝다. 트렌드는 트렌드세터라는 역할을 가진 특권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소비자들은 모두 트렌드세터가 될 자질과 기회를 갖고 있다. 남들과 다른 나의 취향을 날카롭게 성장시켜 나가는 인디 놀이를 통해 소비 봇들의 거대한 군무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



PS. 관련 포스트
공장생산인간
떼소비와 머나먼 CRM
Detail = Remix Wetail (디테일의 힘: 롱테일 to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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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12/19 01:38 | PERMALINK | EDIT/DEL | REPLY

    남들과의 '다름'을 넘어 '나다움'을 추구함으로서 좌/우/중의 빅3를 넘어서는 인문-독파(獨波)로 성장하는 것, 그래서 내 취향의 힘이 단지 개인적 경계 뿐 아니라 사회적 지평과 역사적 차원으로 확장되어 가는 것. 컬처리스트로서 제 꿈이기에, 벅샷님의 포스트로부터 큰 공감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2/12/19 19:25 | PERMALINK | EDIT/DEL

      떼봇화에 대한 작은 저항엔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 rodge | 2012/12/19 09:0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작년 대기업의 공모전 타이틀중 하나로 트랜스새터 라는 네이밍이 있었던게 기억나네요.
    어떻게든 참여하고 싶어, 마치 떼소비에 뒤쳐지지 않았다는걸 증명하려 노력했던것만 같아 부끄럽네요.
    저만이 소비할 수 있는게 무엇이 있었는지...생각하게 해주시네요 고맙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12/19 19:25 | PERMALINK | EDIT/DEL

      '다른 나'를 만들어가는 놀이처럼 즐거운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

  • wendy | 2012/12/27 09:57 | PERMALINK | EDIT/DEL | REPLY

    트렌드는 특권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선언해주심에 '자유'를 얻어갑니다! ^^ 틈만 나면 인디놀이에 심취하고 싶었던 '욕망'을 이 곳에서 칭찬받아 가는 것 같아 든든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12/27 19:53 | PERMALINK | EDIT/DEL

      결국 모든 것은 '나'다운 것이 무엇인가로 귀결되는 것이고, 그의 핵심은 나만의 인디놀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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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를 머금은 디테일 :: 2012/12/10 00:00

진정한 디테일은 전체를 머금고 있다. 전체를 머금고 있는 디테일은 어느 순간 드라마틱한 비약을 실행할 수 있다. 전체를 머금고 있지 못한 디테일은 디테일이 아니라 단순 부품에 불과하다. 모두가 부품처럼 보여도 그 중에 디테일은 반드시 존재한다.

전체를 머금은 디테일의 예로 세포를 들 수 있다. 세포는 매우 작다. 하지만 세포 안에는 유기체를 살아 숨쉬게 하는 메커니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세포는 끊임없이 정보와 에너지를 유입시키고 배출한다. 생명체는 끊임없이 인간의 몸을 관통(?)하는 분자의 흐름 자체로 볼 수 있는데 생명체를 구성하는 세포는 생명체의 본질적 행태를 가장 역동적으로 수행하는 작은 기관이다.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본질적 알고리즘을 끊임없이 수행하는 존재. 세포는 전체를 머금은 디테일이다.

내 몸을 구성하는 세포가 이미 거대한 의미를 머금은 채 전체적인 운동을 지속하고 있는데 수많은 세포가 모여서 이뤄진 '나'는 세포만도 못한 디테일 퀄리티를 보일 때가 많다. 자신을 부품으로 간주하고 전체 속의 일개 레고 블록으로 규정된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인 모습.

하나의 세포 안에 '생명체'의 의미가 충만하게 담겨 있다면, '나'라는 존재 안에는 어떤 의미를 담을 것인가? 나는 과연 세포와 견주어 부끄럽지 않은 디테일의 품격을 구현할 수 있는가? 나는 전체를 머금을 수 있는가? 내 안에 담긴 전체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나의 생각 하나, 행동 하나가 전체를 머금은 그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주기적으로 점검을 해봐야 한다. 자칫 부품적인 생각에 빠져 있거나 영혼이 없는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지 수시로 체크하고 교정에 튜닝을 거듭해야 디테일로서의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다.

전체를 머금은 디테일이 '나'일 수 있어야 한다. ^^






PS. 관련 포스트
https://twitter.com/ReadLead/status/264678699826286593
Flow, 정보의 동적평형
세포와 세포 사이
티핑, 알고리즘
Detail = Remix Wetail (디테일의 힘: 롱테일 to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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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티브 :: 2012/11/26 00:06

태어나면서 스마트폰을 만지게 되는 아기는 자라면서 스마트폰을 너무도 당연한 일상으로 간주하고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갖고 놀게 된다. 하지만 어렸을 때 도스 컴퓨터를 갖고 놀면서 성장한 40대 성인은 스마트폰을 접할 때 엄청난 편의성을 제공하는 문명의 이기로 생각한다. 스마트폰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스마트폰을 예전에 사용하던 디바이스 대비 급격하게 변화/발전한 첨단기기로 인식하는 사람이 공존하는 세상. 현대라는 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어떤 사람은 현재를 있는 그대로 보는 반면, 어떤 사람은 현재를 과거의 프레임으로 해석하고 번역한다. 사물과 개념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사람과 그것을 예전 틀에 맞춰서 억지로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사람.

사람은 가장 창의적인 시절에 보고 느꼈던 '상'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40대 남성이 2012년을 살아간다는 것은 1970~80년대에 형성되었던 프레임에 2012년을 끼워 넣고 어거지로 2012년을 이해하려 노력함을 의미한다. 2012년을 살아가고 있지만 결코 2012 네이티브는 아니란 얘기다. 1970년대 네이티브, 1980년대 네이티브로 70~80년대 앵글을 통해 바라보는 2012년의 상. 그건 직시가 아니라 왜곡에 가까운 상일 것이다.

특정 시대를 살아갈 때 그 시대에 네이티브가 되어 살아가는 게 제일 편하고 좋은 것이다. 미국에 사는 사람이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닐 때 겪게 될 어려움을 생각해 보자. 사실상 이방인의 느낌을 갖게 될 수 밖에 없고 항상 머리 속에서는 항상 영어를 다른 언어로 전환시키느라 CPU가 팽팽 돌면서 뇌는 수시로 과부하 모드에 놓이게 될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디지털 네이티브와 디지털 외계인이 공존한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자본 네이티브와 자본 외계인이 공존한다.
특정 트렌드가 대세일 때는 해당 트렌드의 네이티브와 외계인이 공존한다.

세상은 '** 네이티브'와 '** 외계인'이 공존하는 곳이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엇'이 있다면, 자신이 그것에 있어서 네이티브인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네이티브와 외계인을 구분하는 것은 그 '무엇'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가 여부에 의해 좌우된다.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다른 매개체를 동원해서 그것을 해석하지 않고 아무런 도구와 프레임이 없이 그것을 바라보고 인지하고 정의를 내리고 개념 확장을 시키는 것이다.

아무런 기존 도구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보도록 하자. 그랬을 때 그것에 대한 상이 즉자적으로 형성되고 그것에 대한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네이티브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게 된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사람은 어린 시절에 보고 느꼈던 것을 기반으로 프레임을 형성하고 그 고정된 프레임으로 이후에 접하게 되는 것들을 해석하게 되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은 재미가 없다. 나는 아무리 나이를 먹더라도 새롭게 접하게 되는 물질과 개념을 어린아이와 같은 유연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옴니 네이티브가 되고 싶다. 2012년을 살아가지만 사실상 70~80년대를 살아가는 2012 외계인이 되는 건 내겐 그닥 재미가 없다. 난 2012 네이티브가 되고 싶다. 어느 시공간을 접하더라도 그 시공간의 네이티브가 되고 싶다. ^^


PS. 관련 포스트
소외, 알고리즘
Mobile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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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1:46 | DEL

    For the reason that the admin of this website is working, no uncertainty very soon it will be famous Read & Lead - 네이티브, due to its feature contents.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11/27 00:59 | PERMALINK | EDIT/DEL | REPLY

    바로 이런 마인드가 벅샷님이 늘 신선한 사고방식을 유지하시는 비결인 거겠죠 ^^ 자기 시스템, 자기 제도권 안에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칼바람이 부는 시간의 숲에 겁없이 뛰어드는 야생동물 같은 문화의 여정. 외롭지만 항상 매력 있는 것 같아요.

    • BlogIcon buckshot | 2012/11/27 09:43 | PERMALINK | EDIT/DEL

      시간의 숲에 뛰어든 야생동물.. 너무 멋진 비유이십니다. 정말 제가 야생동물이 되어 시간의 벌판을 달리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설레이는데요. ^^

      하나의 문장으로 저의 오전을 화사하게 만들어주시니 넘넘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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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 즐기기 :: 2012/11/12 00:02

많이 안다는 것은 수많은 레거시 속에 갇혀 있고 그 안에서 새로운 호기심을 생성하고 창의와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동력이 약함을 의미한다. 모르는 것이 많을 때 궁금증이 발생하고 창의와 혁신의 촉발점이 형성되기 용이하다. 모름을 즐길 필요가 있다.

뭔가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앎 속에 숨어 있는 함정을 직시하는 것이다. 안다는 것은 아주 엷게 대상을 파악한다는 것이지 대상과 대상을 둘러 싼 관계의 본질을 관통하는 것이 충분히 아닐 수 있다. 많이 안다는 것은 많은 것을 모름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들이 늘어간다. 파헤치면 파헤칠 수록 미궁은 깊어만 간다. 앎이 모름을 항상 수반하고 앎에 비례해서 모름이 증가한다는 것은 앎과 모름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를 갈망하는 관계임을 의미한다.

배움을 지속한다는 것은 모름의 지평을 늘려 가는 것이다. 평생 배운다는 것은 평생을 지속해도 모름의 끝을 가늠하기 어려움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모른다고 인정한 것'의 합이다. 살면서 나를 알아가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또한, 살면서 나를 몰라가는 것 또한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모름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 나를 몰라가는 것.
모름의 즐거움의 대상이라는 것을 블로깅을 하면서 배우게(모르게?) 된다. ^^



PS. 관련 포스트
무식,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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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ndy | 2012/11/15 17:4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살아오며, 때로는, 많은 것을 모름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기에 주저하고 다소 우울해하기도 하였었는데, '모름의 즐거움'이란 표현을 본 순간, 와! 숨통이 트이는 듯 합니다. 언제나 글로 시원한 생수 한 모금 역할을 하시는 그 열정과 지속성에 경탄을 드립니다. 목을 축였으니 룰루랄라 콧노래 부르며 돌아가렵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2/11/15 20:55 | PERMALINK | EDIT/DEL

      미천한 글에 의미를 부여해 주시고 격려를 해주실 때 저의 글은 생명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저는 글을 썼을 뿐이고 글을 살게 해주시는 분은 Wendy님인거죠.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더욱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게 되네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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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와 효율 :: 2012/10/10 00:00

창의와 효율은 서로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다.

효율이 결핍될 때 창의는 결실을 맺기가 어렵고
창의가 결핍될 때 효율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

창의의 이면에 효율이 있고 효율의 이면에 창의가 있다.

둘은 원래 하나였다.

하나였는데 여러 가지 의도와 목적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분열이 되었고
분열된 불완전한 상태가 되어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한 것이다.

분열이 되면서 창의에 대한 오해가 깊어지고 효율에 대한 착각이 만연하게 되었다.

원래 하나였던 창의와 효율을
서로 다른 상반된 존재가 아닌
서로가 서로의 이면이자 돌파구인 합체 구조로 이해할 때
창의와 효율의 실체를 직시할 수 있게 된다.

시각의 한계, 인지의 한계로 인해 사물과 대상을 전체로 보지 못하고 쪼개서 보게 되는데
합체형 대상을 분할하고 분할된 각각의 객체들을 개별적으로 인식하는 과정은
인지감각 차원에선 정보의 과부하를 경감시켜주나
과부하를 줄인 만큼 loss로 인한 본질로부터의 괴리 현상도 심각해 진다.

창의와 효율이 하나라는 것을 잊지 않을 때
창의에 대한 왜곡된 관점, 효율에 대한 왜곡된 접근을 방지할 수 있다.

분할 인식을 통한 인지의 왜곡을 보정할 수 있는 통합의 렌즈를 장착하고 세상을 바라보는가,
아니면 조각조각 분할된 토막 개념들을 아무 보정 없이 그대로 수용한 채
본질로부터 격리된 박제된 허상 속을 살아갈 것인가? ^^



PS. 관련 포스트
정보의 분열, 행복과 욕심의 분리
창의력과 시공간 인지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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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막.. :: 2012/07/13 00:03

뭔가를 분류한다는 것은 새로운 뭔가가 탄생하기 힘든 프레임을 만들어냄을 의미한다.
뭔가에 분류적 의미와 이름을 부여하는 순간 뭔가는 박제가 되어가는 경향이 있다.
분류는 기존의 것들에 속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새로운 것의 탄생을 저지하기 마련이다.

기존 가득한 세상에서 새로운 걸 만들려면,
기존 분류체계가 외면하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예리하게 채취해야 한다.

그런데..
기존 분류체계는 기존 범주 안에서 편하게 머물게 하는 안주 도우미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범주의 탄생을 끊임없이 암시하기도 한다.

분류는 박제화 공장인 동시에 새로운 범주 생성 발전소이다.

뭔가를 분류할 때, 분류되어 있는 뭔가를 관찰할 때 분류에 내포된 2가지 상반된 속성을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박제화 되어 가는 분류 체계 속의 고정관념을 충분히 음미하면서 고정관념이 형성될 수 밖에 없었던 내막을 잘 이해해 주는 동시에 분류에 내포된 새로운 범주 탄생 욕망의 꿈틀거림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박제는 결코 움직이지 않는 고정된 사물이 아니다. 박제는 움직이고 싶은 욕망, 뭔가 생성해 내고 싶은 욕망을 간직한 채 제자리에 멈춰 있으면서 거대한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는 것이다. 박제의 세월이 길면 길수록 축적된 에너지는 가히 폭발적인 수준일 것이다.  

컨텐츠는 컨테이너 속에 박제된 형태로 존재하기 보다는
컨테이너라는 '막'을 끊임없이 투과하고 유동하는 동적 평형 상태에 놓이게 되고 싶어한다.
분류체계라는 컨테이너를 딱딱한 금속 상자로 볼 것인가, 아니면 유연한 막으로 볼 것인가?

모든 것은 컨텐츠이다.
모든 것은 컨테이너이다.

우리는 컨테이너가 되어 컨텐츠를 우리 안에 담기도 하지만
우리는 컨텐츠가 되어 컨테이너 안에 담기기도 한다.

나를 어떤 컨테이너로 규정할 것인가?
나를 어떤 컨텐츠로 규정할 것인가?

'막' 컨텐츠, '막' 컨테이너.. ^^






PS. 관련 포스트
세포와 세포 사이
막, 도구, 의도, 양자
태그,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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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5/21 00:01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는데
언제부턴가 노트북 자판의 'ㄷ'이 흔들리는 조짐을 보이더니
결국 덜컥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 다음부터 'ㄷ' 받침을 타이핑하는 게 너무 힘들어졌다.

그래서 친한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시에는
ㄷ을 ㅈ으로 대체해서 타이핑하곤 한다.
마치 개파르타 양꾼기획 사장처럼 말이다.
"즌자리는 몰라조 난자리는 안자는 말이 있자."

ㄷ이 빠져버린 후에야 비로소 ㄷ 자판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
사라지기 전에 존재의 가치를 알 수 있다면 좀더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결국 시뮬레이션인가? ^^
평상시에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생활하던 것을 마음 속에서 "그것이 없음"을 가정하고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란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답을 하면 좀 좋아지려나?

노트북 자판을 당분간 수리하지 않으려 한다.
계속 ㄷ이 빠져버린 자판을 사용하면서 ㄷ의 존재감을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빠져버린 ㄷ자판을 보면서 계속 느껴보고 싶다.

ㄷ자판에게서 참으로 큰 가르침을 받은 셈이다. ^^



PS. 관련 포스트
존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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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을읽어볼까 | 2012/07/04 03:5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는 키보드에 있는 ㅜ자가 고장나서 ㅠ로 대체하여 사용한 적이 있는데
    ㅜ가 들어간 단어를 피하기 위해서 대체 단어를 가려내서 쓰게 되던데 나름 재미 있더라규요 귀엽기도 하규요
    뷰드러워 지는 효과도 있어요

    • BlogIcon buckshot | 2012/07/04 09:41 | PERMALINK | EDIT/DEL

      자판 고장으로 인해 오타가 속출하긴 하지만 그 또한 마음의 여유를 불러 일으키는 훈훈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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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해도 될 것을 분석하다. :: 2012/03/28 00:08

.
이노베이터 DNA
제프 다이어 외 지음, 송영학 외 옮김/세종서적


이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제1부 파괴적 혁신, 당신부터 시작하라
1장 파괴적 혁신가 DNA
2장 발견 스킬 1: 연결하기
3장 발견 스킬 2: 질문하기
4장 발견 스킬 3: 관찰하기
5장 발견 스킬 4: 네트워킹
6장 발견 스킬 5: 실험하기

제2부 파괴적 조직과 팀의 DNA
7장 세계 최고 혁신 기업의 DNA
8장 혁신가의 DNA 실행하기: 사람
9장 혁신가의 DNA 실행하기: 프로세스
10장 혁신가의 DNA 실행하기: 철학


음.. 연결, 질문, 관찰, 네트워킹, 실험..
이거 굳이 방대한 리서치를 하지 않고도 그냥 직관적로도 떠올l릴 수 있는 혁신의 평범한 속성들 아닐까?

방대한 리서치가 간혹 허무해 보이는 뻔한 결론으로 귀결되는 것.
혁신은 사실 그럴싸한 속성들로 규정되기 보다는 그야말로 운빨에 의해 나오는 것 아닐까?

혁신 분석의 결과물들은 이제 한계와 진부의 끝을 드러내고 있는 느낌이다.
혁신을 논리적으로 분석한 경영서적들은 이제 더 이상 나오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비선형적으로 창발하는 혁신을 선형적으로 분석하려 들지 않고
혁신은 단지 운빨이고 random movement의 결과임을 주장하는 거친(?) 글들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PS. 관련 포스트
논리와 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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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상상, 그리고 인간 :: 2012/03/26 00:06

난 고소공포증이 있는 편이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다리가 후들거린다.

왜 공포를 느끼는 걸까?
현실을 직시하기 보다는 일어날 지도 모를 뭔가를 상상하기 때문이다.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본다면 공포감은 그리 강하게 출렁거리진 않을 것이다.

공포는 상상에서 비롯된다. 상상은 강력한 공포 발전소이다. 어디 공포만 그럴까? 상상은 많은 감정을 가능케 하고 감정은 사람을 로봇처럼 이리저리 조종한다. 상상 엔진은 대개 부정적인 감정과 연루되어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공포, 불안, 분노, 우울, 슬픔 등은 대개 상상과의 시너지 효과로 인해 증폭되기 마련이다.

상상이 감정과 연결되어 있기에 상상을 멈추는 방법은 간단(?)하다.
감정을 직시하면 된다. 감정을 직시하면 감정이 멈추고 감정이 멈추면 상상이 작동하기 어려워진다.

부정적 감정의 과잉화를 막기 위해선 '나'의 범주를 넓게 설정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오직 협의의 '나'만 생각하고 협의의 '나'의 지나친 생존만을 의식해서는 부정적 감정과 상상의 시너지 쓰나미에서 헤어나오기 어렵다. '나'를 넓게 규정하고 광의의 '나'의 문제는 무엇이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를 상상하기 시작해야 한다.

창의적/긍정적인 상상을 잘 한다는 것은 본능 깊숙이 새겨진 부정적 감정과 상상과의 시너지 메커니즘을 자신 내부에서 자신의 외부로 꺼내서 타자와 세상과 소통하는데 활용함을 의미한다. 부정적인 감정 에너지와 그것을 증폭시키려는 상상 에너지를 자신 안에 가두지 않고 자유롭게 바깥 공기를 마시며 유동할 수 있게 방생할 수 있는 능력. 그렇게 할 수 있는 의지와 스킬이 상상력의 크기를 좌우한다.

나를 좁게 볼 것인가, 나를 넓게 볼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상상의 용도가 분기점을 타게 된다. 사사롭고 시시각각 발생하기 일쑤인 부정적 감정의 흐름에서 벗어나서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는 테마에 대해 감정을 작동시키고 상상의 트랙을 밟아나갈 수 있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 감정을 직시하기도 하고, 감정을 자극하기도 하는 것.
상황에 따라 상상을 억제하기도 하고, 상상을 증폭하기도 하는 것.

감정과 상상은 지금까지 인간을 지배해온 강력한 로봇 조종자였다. 앞으로 인간이 지금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변모한다면 그 혁명의 기반은 감정/상상과 인간의 관계 전복일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감정하고 상상할 자격을 갖고 있다. 그렇게 변해갈 수 있는 인간만이 생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상상,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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