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전략/지식/미래'에 해당되는 글 133건

극세관심 :: 2012/05/11 00:01

스마트폰은 관심을 분절화시키고 커스터마이징시킨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나의 관심을 극도로 세분화시키고 세분화된 관심을 철저히 나의 취향에 맞게 최적화시키게 된다. 예전엔 1시간~2시간을 진득하니 투입하던 관심이 이젠 1분 단위로 쪼개져서 운용된다.

극세화된 관심은 매우 쉬크한 태도를 취한다. 사람과 같이 있어도 사람에 관심을 그닥 많이 주지 않고 철저히 나의 관심을 끄는 정보에만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회의를 해도 자신에게 관심가는 정보에만 귀를 기울이고 나머지 정보는 모두 스킵한다.

스마트폰은 수많은 연결을 가능케 한 동시에 심도 깊은 단절을 리드하고 있다. 연결은 증식에 증식을 거듭하고 있으나 각각의 연결점들의 농도는 매우 희박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끊어짐 상태로 지내면서 간헐적인 연결이 일어날 뿐이다. 연결 심화 & 단절 심화.

극세화/이기주의적 관심이 심화될 수록, 문자의 힘은 드세져만 간다. 면대면 회의 대신 이메일로 일을 하고 면대면 대화, 음성통화 대신 메신저 대화가 일상을 점유한다. 그게 극세화된 나의 관심의 이기주의적 스탠스에 적합한 툴이기 때문이다.

심이 분절화될 수록, 관심의 대상인 인간도 분절화된다. 나는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가? 사람? 아니다. 나는 극도로 세분화되고 나의 순간적 관심 취향에 부합하는 세포 레벨의 극세화된 존재와 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결코 사람이라 볼 수는 없다.

내가 보는 드라마, 내가 읽는 책, 내가 먹는 음식에서 나의 취향에 부합하는 것만 취한다면 드라마,책,음식은 해체 후 재조립되어야 한다. 관심/취향은 이미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관심은 드라마,책,음식 뿐만 아니라 사람마저도 재단하고 있다.

관심 기반의 연결은 관심 기반의 단절의 이면이다. 관심을 따라 연결되고 관심을 따라 단절된다. 단절 기반의 조건부 연결. 그게 연결의 본질이다. 연결성이 좋아진 게 아니라 on-off의 자유도가 높아진 것이다. 사람도 관심 앞에선 철저히 해체된다.

나는 누구인가? 
극세관심의 총합인가? 

그럼 나는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가?
나의 극세관심에 적합한 분절화된 극세모듈들인가?

관심이 세분화되고 세분화된 관심의 이기주의가 창궐하게 되고 있는데
그런 과정 속에서 인간은 과연 무엇이 되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



PS. 관련 포스트
바깥, 알고리즘
감정과 관심을 지불하다
가치 에너지 준위차에 의한 '관심'의 이동
주목,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353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05/12 00:2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단절 기반의 조건부 연결" 진짜 어렵고 오묘한 용어네요 ㅎㅎ 이런 스타일의 철학 세계를 여기 말고 어디서 또 경험해볼 수 있을까요? (군대 땜에) 심신이 지대로 지쳐가는 와중에도 뚫어져라 집중하게 만드는 흡입력, 정말 닮고 싶습니다. ^^ 주말이라 정말 다행인 것 같은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 BlogIcon buckshot | 2012/05/12 15:44 | PERMALINK | EDIT/DEL

      저도 잘 모르고 적는 글입니다. 잘 몰라서 적는 것이고 적다 보면 좀더 잘 이해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고 살아갑니다. ^^ 항상 응원해 주시는 것이 제겐 무한의 에너지 공급처럼 느껴지구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NAME PASSWORD HOMEPAGE

표현과 은폐 :: 2012/04/11 00:01

글을 쓴다는 건 뭔가를 드러내면서 다른 뭔가를 감추는 것이다.
뭔가를 감추지 않고서 뭔가를 드러내기란 매우 어렵다.
표현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표현을 통해 감추고 싶은 것도 있기 마련이다.

또한, 표현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 있고
표현을 통해 의도와는 상관없이 감춰지는 것도 있다.

표현은 결국 4가지 양상으로 전개된다.
1. 의도된 드러냄
2. 의도된 은폐
3. 의도하지 않은 드러냄
4. 의도하지 않은 은폐

표현을 하면서 은폐를 가시화할 수 있다면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창의와 혁신은 표현된 것들에 수반되는 은폐된 것들을 표현해낼 때 발현된다.

뭔가가 표현될 때 그것은 앞면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의 뒷면에 무엇이 은폐되고 있는지 볼 수 있다면 온전한 시야를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타인의 표현을 보면서 타인의 앞면 뿐만 아니라 타인의 뒷면을 바라보고
나의 표현을 돌아보면서 나의 앞면 뿐만 아니라 나의 뒷면에 무엇이 있는지 지각해야 한다.

우린 표현된 세상을 인지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건 세상의 피상적 앞면에 불과하다.
표현의 이면에 자리잡은 은폐의 양상은 무엇인지를 퍼즐 맞추듯 찾는 놀이를 즐겨야 한다.

만물은 앞면과 뒷면으로 구성된다.
앞면과 뒷면을 모두 인지할 때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채널이 확보된다.

표현과 은폐가 끊임없이 생성되는 세상.
평생을 지속해도 충분한 거대한 놀이터인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비밀코드 해독과 진공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341
NAME PASSWORD HOMEPAGE

제약과 자유 :: 2012/04/09 00:09

제약을 관찰하면 할수록 제약은 자유의 뒷면임이 분명해진다.


살면서 억압을 느낄 때가 많다. 학생은 공부가 억압이고, 회사원은 일이 억압이고, 주부는 가사가 억압이다. 경영자는 성과가 억압이고 예술가는 창작이 억압이고 엔터테이너는 관심이 억압이다. 모두가 자신을 억압하는 뭔가로부터의 압박을 온 몸으로 느끼며 그것에 대응하면서 살아간다.

트위터를 만나기 전까지는 내게 있어 억압은 그저 억압이었고, 제약은 그저 제약일 뿐이었다. 그런데 트위터를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트위터는 나에게 억압, 제약, 자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140자의 제약조건으로 인해 트위터에 글을 올릴 때는 마음 편하게 글을 적기가 어렵다. 항상 140자를 넘으면 안된다란 부담감을 느끼며 글을 올리게 된다. 그런 부담감이 글을 무작정 적기 보다는 어떻게 글을 구성할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들고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깊이에 깊이를 더하게 되며 글은 점점 함축성을 띠어가게 된다.

한 대상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면 그 대상은 예전에 알고 있던 그 대상이 더 이상 아닌 새로운 개념으로 다가오게 된다. 깊이 있는 생각이 대상에 대한 피상적 이해를 넘어 대상의 또 다른 면에 대한 이해를 자극하고 대상이 갖고 있는 본질적 요소에 다가가게 되는 통찰 증대의 순간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어떤 대상을 향해 깊이 있게 생각한다는 것은 사실 큰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저 피상적인 뷰로 세상을 바라보고 수박 겉핥기 식의 인식으로 세상을 대하기 쉬운 일상 속에서 심도 있는 사고를 한다는 것은 매우 주체적인 방식으로 자유를 향유하는 것이다. 그런 주체적 자유 향유의 기회는 그리 자주 오지 않고 어떤 계기를 맞이할 때 경험하게 된다.

트위터는 매우 큰 제약 조건 속에 유저를 몰아 넣는다. 하지만 트위터 유저는 그런 제약 조건 속에서 표현의 한계에 대해 생각하고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고민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표현하고 싶은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전개하게 된다.  깊게 파고 들어가면서 얼핏 느끼게 되는 대상 속에 숨어 있는 본질. 대상은 자신이 품고 있는 본질을 그렇게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열정적인 채굴을 통해서 발굴되기 마련인 것이 본질이다.  얕게 생각하고 얕게 표현하는 말을 난무시키면 시킬수록 본질은 점점 미궁 속으로 숨게 된다.

나를 둘러 싼 억압이 과연 온전히 억압의 요소로만 구성되어 있는지, 내가 느끼고 있는 자유가 온전히 자유의 요소로만 축조되어 있는지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억압 속에 깃들어 있는 자유의 숨결을, 자유 속에 도사리고 있는 억압의 그림자를 간파해야 한다.

뭔가를 함에 있어서 제약을 느낀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 분기점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제약은 반드시 선택을 낳기 마련이다.  제약조건 속에서 나는 선택의 자유를 부여받게 되는 셈이다. 거기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나의 정체성을 어떻게 표현하고 나의 세계관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의 문제다. 내가 하는 선택의 합은 바로 나 자신이다.  결국 나의 인생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해왔고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 자체인 것이다. 제약은 선택의 발전소다.  세상을 향한 나의 스탠스를 명확히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제약.  제약은 결국 자유를 생성하는 자유의 어머니인 것이다. 제약을 느낄 때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인지해야 한다.


제약을 관찰하면 할수록 제약은 자유의 뒷면임이 분명해진다.  ^^




PS. 관련 포스트
한확,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340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04/10 19:1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정말 예술과 같은 글이에요. "제약은 선택의 발전소이다." 곧 나를 둘러싼 사회 체제, 혹은 물리적 환경 등이 내 자아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생각지도 못했던 자아를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 어렴풋이 인지해온 사실이지만 buckshot님께서 여러 각도로 선명하게 만들어주시니 수 없이 곱씹어보고 싶습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2/04/11 00:16 | PERMALINK | EDIT/DEL

      예술가의 눈에는 모든 텍스트가 예술로 보입니다. The Black Ager님의 눈에 비친 세상은 제 눈에 비친 세상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

NAME PASSWORD HOMEPAGE
< PREV #1 #2 #3 #4 #5 ... #45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