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을 관찰하면 할수록 제약은 자유의 뒷면임이 분명해진다.
살면서 억압을 느낄 때가 많다. 학생은 공부가 억압이고, 회사원은 일이 억압이고, 주부는 가사가 억압이다. 경영자는 성과가 억압이고 예술가는 창작이 억압이고 엔터테이너는 관심이 억압이다. 모두가 자신을 억압하는 뭔가로부터의 압박을 온 몸으로 느끼며 그것에 대응하면서 살아간다.
트위터를 만나기 전까지는 내게 있어 억압은 그저 억압이었고, 제약은 그저 제약일 뿐이었다. 그런데 트위터를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트위터는 나에게 억압, 제약, 자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140자의 제약조건으로 인해 트위터에 글을 올릴 때는 마음 편하게 글을 적기가 어렵다. 항상 140자를 넘으면 안된다란 부담감을 느끼며 글을 올리게 된다. 그런 부담감이 글을 무작정 적기 보다는 어떻게 글을 구성할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들고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깊이에 깊이를 더하게 되며 글은 점점 함축성을 띠어가게 된다.
한 대상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면 그 대상은 예전에 알고 있던 그 대상이 더 이상 아닌 새로운 개념으로 다가오게 된다. 깊이 있는 생각이 대상에 대한 피상적 이해를 넘어 대상의 또 다른 면에 대한 이해를 자극하고 대상이 갖고 있는 본질적 요소에 다가가게 되는 통찰 증대의 순간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어떤 대상을 향해 깊이 있게 생각한다는 것은 사실 큰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저 피상적인 뷰로 세상을 바라보고 수박 겉핥기 식의 인식으로 세상을 대하기 쉬운 일상 속에서 심도 있는 사고를 한다는 것은 매우 주체적인 방식으로 자유를 향유하는 것이다. 그런 주체적 자유 향유의 기회는 그리 자주 오지 않고 어떤 계기를 맞이할 때 경험하게 된다.
트위터는 매우 큰 제약 조건 속에 유저를 몰아 넣는다. 하지만 트위터 유저는 그런 제약 조건 속에서 표현의 한계에 대해 생각하고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고민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표현하고 싶은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전개하게 된다. 깊게 파고 들어가면서 얼핏 느끼게 되는 대상 속에 숨어 있는 본질. 대상은 자신이 품고 있는 본질을 그렇게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열정적인 채굴을 통해서 발굴되기 마련인 것이 본질이다. 얕게 생각하고 얕게 표현하는 말을 난무시키면 시킬수록 본질은 점점 미궁 속으로 숨게 된다.
나를 둘러 싼 억압이 과연 온전히 억압의 요소로만 구성되어 있는지, 내가 느끼고 있는 자유가 온전히 자유의 요소로만 축조되어 있는지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억압 속에 깃들어 있는 자유의 숨결을, 자유 속에 도사리고 있는 억압의 그림자를 간파해야 한다.
뭔가를 함에 있어서 제약을 느낀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 분기점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제약은 반드시 선택을 낳기 마련이다. 제약조건 속에서 나는 선택의 자유를 부여받게 되는 셈이다. 거기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나의 정체성을 어떻게 표현하고 나의 세계관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의 문제다. 내가 하는 선택의 합은 바로 나 자신이다. 결국 나의 인생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해왔고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 자체인 것이다. 제약은 선택의 발전소다. 세상을 향한 나의 스탠스를 명확히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제약. 제약은 결국 자유를 생성하는 자유의 어머니인 것이다. 제약을 느낄 때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인지해야 한다.
제약을 관찰하면 할수록 제약은 자유의 뒷면임이 분명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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