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알고리즘 :: 2008/11/10 00:00

오래 전에 이런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서류를 복사하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복사 새치기를 하기 위해 "제가 먼저 복사하면 안될까요?"라고 말하는 것보단 "제가 먼저 복사하면 안될까요? 왜냐하면...."라고 말하는 게 훨씬 양해를 구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왜냐하면" 뒤에 어떤 말이 나와도 상관없다.  단지 "왜냐하면"이란 말 자체가 듣는 사람을 설득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격물치지님의 '왜냐하면, 최고의 설득 방법' 포스트를 보고 "왜냐하면"이란 말의 파괴력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하다가 문득 끌로테르 라파이유(컬처 코드 저자)의 재미있는 커멘트가 떠올랐다. "사람은 질문을 받을 때, 질문자가 원하는 답을 하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컬처 코드란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책 내용이 이러저러한 루트를 통해 많이 알려져 있다 보니 주워 들은 내용이 좀 있는 편이다.

그 내용 중에 정말 인상적인 내용이 하나 있었다.

미국인의 비만에 대한 얘기다.
미국인들은 날씬한 사람들은 활동적/참여적이라고 생각하고 뚱뚱한 사람들은 날씬한 사람들에 비해 사회적 관계의 단절을 더 많이 경험한다고 생각한다.  비만해지면 비만한 몸이 원활한 사회적 관계를 방해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관계 도피 성향을 보이게 된다고 생각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라파이유는 그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비만해지기 때문에 도피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도피하고 싶기 때문에 비만해진다는 것이다.  즉, 무엇인가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사람 속에 코딩되어 내재하고 있는 기제를 작동시켜 비만을 유도하고 유도된 비만은 그 사람을 자연스럽게 도피 추구형 인간으로 변모시켜 간다는 것이다.

즉, 비만의 경향이 엿보이면 내가 무엇인가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잠재 욕구가 발현되고 있는 것이며 그 원인을 찾아 욕구를 충족/해결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제시하면 비만의 이유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재미있다..

결국 인간 속에 내재하고 있는 코딩을 역설계해서 수많은 기제를 밝혀내면 이런 재미있는 솔루션이 무더기로 쏟아진다는 것인데...  인간 자체가 알고리즘이라..

이거 뇌과학이 점점 땡긴다..  땡겨... ^^



PS. 1~2년 사이에 몸무게가 많이 늘었다.  위 글을 적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거 아무래도 블로깅 때문인 것 같다.  2006년 12월부터 블로깅을 시작하면서 블로깅의 묘미를 알게 되었고 점점 블로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고.. 원하는 만큼 나의 생각을 충분히 블로그에 담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욕구 불만이 생겨났다. 그걸 해소하기 위해선 블로깅을 방해하는 활동을 못하게 막는 것이 필요했고 그 유력한 방편으로 살이 찌게 된 것이다.  난.. 블로깅 때문에 뚱보가 되었다..  빨리 대안을 찾지 못하면 살이 계속 찌게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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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냐하면, 최고의 설득 방법

    Tracked from 격물치지 [格物致知] | 2008/11/12 00:31 | DEL

    설득, 협상 사실, 저에게 올해 키워드는 설득, 협상입니다. 협상을 위해 많은 출장도 다녔고, 많은 미팅도 했고 많은 책도 읽었습니다. 사실 포스팅도 많은 부분 설득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

  • 바벨의 현대적 의미

    Tracked from ego + ing | 2008/11/12 20:36 | DEL

    인간은 말을 하기 위해 생각한다.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욕구이고생각은 이것을 위한 활동이기 때문이다.그런 의미에서 말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그래서 우리사회는 듣기를 강조한다.듣..

  • BlogIcon philosup | 2008/11/10 19:20 | PERMALINK | EDIT/DEL | REPLY

    도피하면 살이 빠지는 사람도 있답니다. 도피에 음식을 먹는 것도 포함되기도 하기 때문이죠. 제가 그렇기 때문에 후자의 의견은 전혀~ 공감이 가지 않네요.

    • BlogIcon buckshot | 2008/11/10 19:34 | PERMALINK | EDIT/DEL

      아.. 제 포스팅은 '관계로부터의 도피'에 대한 내용이었고,
      philosup님의 도피는 '음식으로부터의 도피'네요~

      저도 음식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음식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 ㅠ.ㅠ

  • BlogIcon 토마토새댁 | 2008/11/11 13:50 | PERMALINK | EDIT/DEL | REPLY

    크큭...
    도피보다는 퐁당 빠지는 스따일인 새댁이 살찌는 이유는 ????
    그야 퐁당 빠지니 그렇지...ㅋㅋ
    모든 것을 먹는 것에 귀결하니 어쩔 수 없는 결과...
    블로그땜시 살찌신다는 말씀이 본문내용보다 더 찐~~~하게 다가오는 것은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님과
    보잘 것 없는 내가 같은 점이 있다는 동질감을 확인하게 되어서 인듯...ㅎㅎ

    근데 댓글에서 링크가 걸려지네요..우와 신기해라..
    inuit님 댁에 링크 타고 놀러가야징...

    오늘도 많이 많이 웃으세요^^

    • BlogIcon buckshot | 2008/11/11 19:33 | PERMALINK | EDIT/DEL

      항상 토마토새댁님 블로그를 보면서 배워야지 배워야지 하면서 계속 못 배우고 있습니다. 언젠간 배울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제겐 항상 있구요.. ^^

    • BlogIcon 토마토새댁 | 2008/11/13 13:55 | PERMALINK | EDIT/DEL

      오잉~~~
      제가 뭘 배우실 것이 있다시는 공..
      놀리시는 거죵? 놀리시면 싫엉싫엉...-.-;;

    • BlogIcon buckshot | 2008/11/13 19:04 | PERMALINK | EDIT/DEL

      아주 중요한 걸 갖고 계십니다. 전 그걸 배우고 있구요.. ^^

  • BlogIcon inuit | 2008/11/11 22:49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하하하.. PS에 포스팅의 진수가 담겨있었군요.
    왠지 buckshot님은 슬림할듯한데 말이죠.
    저도 요즘 살과의 전쟁중입니다. ㅠ.ㅜ

    • BlogIcon buckshot | 2008/11/12 00:23 | PERMALINK | EDIT/DEL

      옛날엔 정말 슬림했는데 요즘엔 정말 뚱보가 되었습니다. 170에 83정도 되는 것 같네요... ^^

      inuit님, 감기는 다 나으셨나요? 혹시 살과의 전쟁에서 도피하고픈 욕구로 인해 감기에 드신 것은 아니신지..

  • BlogIcon 격물치지 | 2008/11/12 00:3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연속으로 제 포스팅을 인용해 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
    제 목표가 술과 살과의 전쟁인데... 둘 다에 달리기가 좋더군요

    • BlogIcon buckshot | 2008/11/12 08:55 | PERMALINK | EDIT/DEL

      제가 영향을 크게 받은 포스트여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
      격물치지님의 마라톤에 감명받아 저 그저께부터 집에서 러닝머신 시작했습니다. 이번엔 남다른 각오로 임할겁니다~

  • BlogIcon egoing | 2008/11/12 20:3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는 말과 생각의 관계에 대해서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11/13 08:57 | PERMALINK | EDIT/DEL

      인과관계의 역전.. 참 재미있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egoing님의 트랙백을 읽고 넘 깊은 인상을 받은 나머지 실수로 트랙백을 2개나 올리고 말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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