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설정의 함정 :: 2013/06/07 00:07

점을 보러 가는 자는 '점보기'라는 설정에 함몰되기 쉽다. 점을 보러 가는 상황 자체가 점쟁이의 말에 넘어갈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뭔가에 의존하고 싶은 마음 자체가 점쟁이가 점을 잘 맞출 수 있는 강력한 사전 설정인 것이다. 이미 수비벽이 허물어진 상황인데 골잡이가 골을 펑펑 터뜨리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다.

행복도 비슷하다. "나는 행복한가?"란 질문은 이미 나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란 폭력적 가정에 기반하기 마련이다. 질문 자체가 자신의 현 상황을 비하하는 설정인 것이다. 그런 설정의 함정에 빠진 상태에서 질문을 하게 되면 결과는 매우 진부한 답변을 산출할 수 밖에 없다.

힐링도 비슷하다. "나는 힐링이 필요해"란 말 속엔 힐링산업의 컨트롤에 자신을 내맡기는 힐링봇의 나약한 스탠스가 설정되어 있다.  "나는 힐링이 필요해"는 힐링산업의 수익 극대화로 소비자들을 휘몰아가는 일종의 주술이 아닐까?


힐링의 대상이 무엇인가?  인간의 불안?  그게 힐링산업의 요법으로 해결이 될 수 있을까?  이미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자에게 상업적 힐링 처방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힐링 처방을 받아도 그 때뿐이지 이윽고 다시 힐링 약이 필요한 상황에 빠질 텐데 말이다. 희미해져 가는 자아 현상을 처방하려면 나를 복원할 것을 결단하고 실행해야지 어설픈 힐링 요법으로 이슈를 해결할 수는 없다.

지친 몸과 마음을 섣불리 힐링 비즈니스의 처방에 의존하기 보단 "왜 지치는가?"에 대해 먼저 생각을 해봐야 한다. 지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응시하고 어떻게 하면 덜 지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힐링을 한다는 건 끝없는 힐링의 무한루프 속에서 속절없이 시간을 흘려 보내겠다는 결단을 하는 것이다.

병은 약의 BM이다. 병주고 약주고, 그런데 약은 잘 듣지 않고. 그게 '병-약' BM의 핵심이다. 아무리 약을 먹어도 잘 듣지 않는다는 건 근본적인 처방 없이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힐링 산업은 계속 변죽을 울리면서 발전을 거듭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변죽을 울려야 BM의 지속성이 확보되니까.

행복의 구조, 힐링의 구조에 대해 생각해 보자.

파랑새가 옆에 있는데도 머나먼 곳으로 파랑새를 찾아 떠나고 싶어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처해 있는 행복의 구조 아닐까?  어떤 행복의 구조를 선택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행복을 획득하기가 어려운 구조 속에 놓일 것인가, 아니면 행복을 수시로 맛볼 수 있는 구조를 설정하고 그 안에서 플레이할 것인가?

힐링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힐링 처방을 권유받고 그에 따른 처방전을 수행하고 또 다시 힐링에 굶주리게 되는 영원한 힐링 환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힐링 산업이 권장하는 영원한 환자 모드에서 빠져 나와 상업적 힐링의 손아귀를 비웃을 수 있는 자체 힐링 마스터가 될 것인가?

설정 자체가 함정이다. 설정의 함정에 빠지면 그 상태로 게임은 이미 끝나 버린다. 게임이 끝난 상태에서 게임을 지속하려 하지 말고 게임이 끝나기 전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서 설정의 함정을 직시해야 한다. 설정 자체를 판단하고 어이없는 설정의 늪에 빠지려는 발을 잽싸게 빼낼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행복에 대해 올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힐링의 함정에 빠질 일은 좀처럼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

행복 현재

"나는 지금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은가?"라고 질문하지 않고 "나는 지금 어떤 행복을 누리고 있는가?"라고 질문해야 한다. 즉, 행복은 지금 이 순간을 어떤 행복으로 얼마나 구체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란 얘기다. 누굴 칭찬할 때 구체적으로 칭찬해야 칭찬의 진정성이 살아나듯, 행복도 구체적으로 정의해야 행복의 진정성이 생성된다. 나의 현실을 어떤 행복으로 실감나게 정의할 수 있는가?




PS. 관련 포스트
행복 현재
설정 자체가 함정이다.
병과 약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518
  • BlogIcon 이문연 | 2013/06/07 09:46 | PERMALINK | EDIT/DEL | REPLY

    행복도 구체적으로 정의해야한다는 말 공감됩니다. 잘 읽고 갑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3/06/07 09:58 | PERMALINK | EDIT/DEL

      질문과 정의만 잘해도 참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더러운곰 | 2013/09/02 12:59 | PERMALINK | EDIT/DEL | REPLY

    "나는 지금 어떤 행복을 누리고 있는가?" 감사할것이 정말 많아요. 항상 누군가로부터 보호받고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성인이 되기전에는 부모님, 지금은 대학 이라는 울타리에서 도시농업을 위해 공부하는 내 자신을 보고있으면 얼마나 많은 것을 받으며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는지 느낍니다. 좋은글 읽고 갑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9/02 19:28 | PERMALINK | EDIT/DEL

      감사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

NAME PASSWORD HOME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