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 알고리즘 :: 2010/02/10 00:00'증식, 알고리즘'에서 얘기했듯이 정보는 자가증식성을 갖고 있다. 문자의 발명을 통한 정보의 저장/재생산/전파가 인간생활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정보의 자가증식성은 상상하기 힘든 속도로 부/현상을 비선형적으로 초고속 성장시키고 있다. 정보의 자가증식은 복제에 기반한다.
"정보의 복제,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어떤 책이 한 권 있다고 하자. 과연 그 책은 저자에게 독창성을 모두 의존하고 있을까. 아마 그런 책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저자가 살았던 시공간 속에서 영향을 주고 받았던 사람과 그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생각과 경험의 영향을 분명히 받았을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밝힌 자신의 생각, 손자가 손자병법에서 천명한 자신의 컨셉은 마키아벨리에게 영향을 주고 손자에게 영향을 준 수많은 사람들의 말들이 섞이고 변형되어 집합적인 지식으로 발화되었을 것이다. 마키아벨리,손자의 지혜가 녹아 있는 '권력의 법칙', '전쟁의 기술'을 쓴 로버트 그린도 마찬가지이다. 로버트 그린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자신에게 영향을 준 수많은 구루들의 숨결이 담겨 있는 집합적인 언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는 태생이 비경쟁적/관계적이어서 다른 정보와 자유롭게 섞일 수 밖에 없는 본능을 갖고 있다. 정보가 정보가 섞여서 새로운 정보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정보와 정보가 서로를 복제하고 변이를 거치면서 새로운 정보를 낳는 과정을 지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이 되었든, 아티클이 되었든, 블로그 포스트가 되었든, 트윗이 되었든, 모든 정보는 복제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글을 쓸 때, 그것이 내 생각인 것 같지만, 생각은 수많은 외부 정보들이 복제를 통해 유입/임베딩되어 있는 복제 집합체일 뿐이다. 생각에서 복제기능을 배제하면 아마 생각은 작동을 멈출 것이다. '저작, 알고리즘'에서 얘기했듯이 정보 산업 관점에선 '저작권'이 다양한 맥락 속에서 다채롭게 발전해 가면서 '정보의 복제'라는 쉽지 않은 주제에 어떻게든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UGC 관점에선, 정보 복제에 대해 여유롭고 열린 시각을 도출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내가 생성(?)한 정보를 타인이 복제하는 것에 반감을 가질 수 있겠으나, '나의 정보'란 생각 자체가 정보에 대한 왜곡된 환상일 수 있다는 측면에선 내가 생성하는 UGC(User Generated Content)에 대해 유연한 관점을 적용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정보가 복제되었을 때, 복제 자체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가지는 것은 나에게 별로 이득이 되지 않는다. 정보는 어차피 복제 본능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복제 본능이 강력한 정보의 자유로운 flow를 도대체 어떻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 복제되는 나의 정보가 나와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고
'나' 없이는 빛이 바랠 수 밖에 없는 나만의 컨텍스트(context)를 내포하고 있는가? 아니면, 누가 사용하더라도 그닥 티 나지 않는 범용적인 단순 컨텐츠에 불과한 것인가?
나만의 컨텍스트를 창출할 수 있다면, 제 아무리 거센 복제의 파도가 몰아 닥쳐도 '나'와 '내가 생성한 정보' 간의 유연한 연결의 끈은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며 새로운 '나만의 컨텍스트' 생성의 흐름을 유유히 지속할 것이다. '복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복제되기 쉬운가, 어려운가'가 핵심인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범용, 알고리즘 buckshot과 로버트 그린 Read & Lead의 블로깅 정책 [지식], Stock vs Flow 정보 복제: Information Remix의 미학 정보, 알고리즘 태그, 알고리즘 증식, 알고리즘 저작,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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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변, 알고리즘 :: 2010/02/08 00:08작년 3월에 구루, 알고리즘을 통해 구월산님의 내공에 대해 포스팅한 적이 있다.
최근 6개월 간 구월산님의 포스트 업데이트가 없었다. 매우 아쉬웠다. 그래서, 트위터를 통해 그 아쉬움을 표현했다. 구월산님 블로그는 6개월이 넘도록 업데이트 되지 않고 있어서 매우 아쉽다. 하지만, 업데이트되지 않아도 여전히 그의 블로그엔 포스가 살아 숨쉰다. 그래서 강추한다. http://songkang.tistory.com/ from web 너무나 감사하게도 구월산님께서 6개월 만의 포스트로 응답해 주셨다. 프로젝트 중에 한번씩 스타벅스에 가서 멍 때리면서 문제에 대해서 몰입을 할 때가 있었다. 커피를 한잔 시켜놓고 식을 때까지 손도 대지 않으면서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면 몸이 막 아파온다.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소음이나 낮게 깔리는 음악소리도 몰입에 전혀 방해되지 않는다. 그냥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하는 시간을 보내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서 사무실로 가곤 했다. 모든 체인점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스타벅스는 몰입하기에 좋은 장소임에 틀림없다. 지금 돌이켜보면 생각에 몰입한다는 것은 머리 속에서 논리를 작동시켜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논리와 말들을 머리 속에서 지우는 과정이다. 말들과 논리와 여러 가지 잡다한 분석들을 머리에서 지우고 나면 어떤 느낌들이 가슴속에 막 파고 들어온다. 사람들 얼굴, 어떤 감정들이 가슴을 채우고 은하수와 같은 흐름이 손에 잡힐 듯이 눈에 보일 듯이 느껴진다. 어떤 의사결정을 염두에 두고 그런 몰입과정을 거치다 보면 어떤 가정은 앞뒤가 막힌 것 처럼 답답하고, 또 어떤 가정은 아무런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올바름은 정해져 있지 않고 해결책이란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항상 말과 논리를 잊고 흐름을 제대로 인지하고 그것에 의거하여 말을 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인정을 해주었다. 어떤 때는 열광적으로 인정을 해주었고, 어떤 때는 존경으로 어떤 때는 간단한 인정으로 말이다. 회의석상에 빙 둘러앉는 사람들을 보면 가지각색이다. 어떤 사람은 내면에 굉장한 힘을 갖고 있어서 그 힘에 압도되는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고, 굉장히 순순한 영혼을 갖고 있지만 흐르지 않고 멈춰있어서 고집스런 사람도 있다. 온유하고 따뜻하고 추진력이 있지만 작은 일에 집착하고 자기 이익을 먼저 내세우는 사람도 있고 흐름도 있고 올바름도 있지만 너무 그릇이 작아 큰일을 못할 것 같은 사람도 앉아있다. 일이란 그 때에 맞는 올바름이 있다. 사람들은 그 올바름을 잘 알지 못한다. 신문기사, 수치,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이유, 비효율성, 불안감등 다양한 형상으로 문제는 우리에게 지금이 문제라는 것을 알려주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것이 개별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그냥 치부해버린다. 그러면서 불안감에는 휩싸여 있으면서 앞으로 우리는 잘되지 못할 거라는 말만 되뇌고 있다. 올바름을 알지 못하면 집중할 수 없고 결국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없다. 문제들에서 올바름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배운 것은 거저 효율성과 품질 또는 별로 쓸모 없는 전략뿐이다. 현대라는 시대와 문화, 현대가 이루어놓은 문명들, 현대를 만들어낸 위대한 생각들, 규칙, 기술들과 미래가 치열한 전쟁을 하고 있고 대부분 문제는 여기서 파생된다. 사람에 대한 관점이 서로 전쟁하고 있고, 가치로운 것에 대한 생각들이 서로 싸우고 있다. 중세 세계관과 근대 르네상스 시기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처럼 우리는 근본적인 변화 중심에 놓여있고 변화흐름은 빨라지고 있다. 대부분 문제들은 여기서 파생된다. 새로운 세계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그 세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이며, 어떤 범위로 어떤 방식으로 그 세계를 받아들일 것인가가 우리가 당면한 문제이다. 우리는 문제를 너무 협소하게 정의한다. 문제들은 서로 연결되어있고 대부분 우리가 생각하는 문제는 그 모습일 뿐 그 문제를 만들어내는 뿌리에는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다. 결국 올바름을 세울 수 없으며 집중할 수 있는 힘도 없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도 얻지 못한다. 물론 반복되는 실패의 힘은 위대하다. 반복해서 실패하다 보면 결국 우리는 올바름에 이를 수 밖에 없다. 단, 그때까지 치루어야 하는 수많은 댓가를 감수하기만 하면 된다. 개인이 가진 기회, 시간, 자원이 한정적이라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올바름은 변화를 아는 힘에서 나온다. 변화를 아는 것은 거대한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이때까지 우리가 쌓아놓은 지식은 개념과 원리, 기술에 대한 것이다. 당연히 이런 지식들이 필요하지만 오늘날 올바름을 세우기 위해서는 아예 새로운 능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변화를 아는 힘이다. 몰입하고 상상하고 깊이 관찰하고, 자신에 맞게 공부하고 쓸데없는 일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으로 그런 힘을 길러야 한다.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힘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생존하는데 필요한 최소한 능력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변화를 아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변화를 좀 더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어야 하고 그걸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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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알고리즘 :: 2010/02/05 00:05
리처드 도킨스의 최신작 '지상 최대의 쇼'를 읽다가 재미있는 문구를 발견했다. 실험이란 내가 직접 뛰어들어서 뭔가를 하는 것이다. 내가 조작하는 것이다. 내가 뭔가를 체계적인 방식으로 바꾸고, 그 결과를 변화가 없는 '대조군'과 비교하거나 다른 변화의 결과와 비교하는 것이다. 실험은 단순한 현상 관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험은 현상 속으로 깊숙히 침투하여 현상에 어떤 교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실험은 개입이요, 조작이다. 이는 질량을 측정하려고 하면 위치를 측정할 수 없고, 위치를 측정하고자 하면 질량을 측정할 수 없다는 양자역학을 연상케 한다. 개입은 대상에 어떤 식으로든 임팩트를 가하게 된다.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읽다가 문득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노트'] 삶과 소비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올 한 해 야구열풍이 의미하는 것 아티클을 트윗에 올렸던 일이 기억난다. 그 트윗에 eustino님께서 주신 댓글의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트렌드는 단순한 현상 관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트렌드는 현상 속으로 깊숙히 침투하여 현상 속에 분포되어 있는 롱테일적인 파편들을 수집하고 그 파편들을 실험적으로 연결하여 일종의 가상 트렌드를 창출한다. 이는 트렌드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고 그 영향이 심대할 경우, 실제 트렌드로 가시화된다. 트렌드 전문가는 트렌드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트렌드의 프레임을 재단하고 트렌드의 흐름을 리드한다. 가장 강력한 트렌드 예측은 트렌드를 직접 만들어서 트렌드 소비자들이 그걸 믿게 만들고 그에 따라 행동하게 세뇌하는 것이다. 트렌드 구루는 정확하게 트렌드를 예측하는 자라기 보다는 트렌드 소비자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유린할 수 있는 자인 것이다.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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