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 알고리즘 :: 2010/02/10 00:00

'증식, 알고리즘'에서 얘기했듯이 정보는 자가증식성을 갖고 있다.  문자의 발명을 통한 정보의 저장/재생산/전파가 인간생활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정보의 자가증식성은 상상하기 힘든 속도로 부/현상을 비선형적으로 초고속 성장시키고 있다.  정보의 자가증식은 복제에 기반한다.

"정보의 복제,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어떤 책이 한 권 있다고 하자. 과연 그 책은 저자에게 독창성을 모두 의존하고 있을까. 아마 그런 책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저자가 살았던 시공간 속에서 영향을 주고 받았던 사람과 그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생각과 경험의 영향을 분명히 받았을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밝힌 자신의 생각, 손자가 손자병법에서 천명한 자신의 컨셉은 마키아벨리에게 영향을 주고 손자에게 영향을 준 수많은 사람들의 말들이 섞이고 변형되어 집합적인 지식으로 발화되었을 것이다. 마키아벨리,손자의 지혜가 녹아 있는 '권력의 법칙', '전쟁의 기술'을 쓴 로버트 그린도 마찬가지이다. 로버트 그린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자신에게 영향을 준 수많은 구루들의 숨결이 담겨 있는 집합적인 언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는 태생이 비경쟁적/관계적이어서 다른 정보와 자유롭게 섞일 수 밖에 없는 본능을 갖고 있다. 정보가 정보가 섞여서 새로운 정보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정보와 정보가 서로를 복제하고 변이를 거치면서 새로운 정보를 낳는 과정을 지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이 되었든, 아티클이 되었든, 블로그 포스트가 되었든, 트윗이 되었든, 모든 정보는 복제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글을 쓸 때, 그것이 내 생각인 것 같지만, 생각은 수많은 외부 정보들이 복제를 통해 유입/임베딩되어 있는 복제 집합체일 뿐이다. 생각에서 복제기능을 배제하면 아마 생각은 작동을 멈출 것이다.


'저작, 알고리즘'에서 얘기했듯이 정보 산업 관점에선 '저작권'이 다양한 맥락 속에서 다채롭게 발전해 가면서 '정보의 복제'라는 쉽지 않은 주제에 어떻게든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UGC 관점에선, 정보 복제에 대해 여유롭고 열린 시각을 도출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내가 생성(?)한 정보를 타인이 복제하는 것에 반감을 가질 수 있겠으나, '나의 정보'란 생각 자체가 정보에 대한 왜곡된 환상일 수 있다는 측면에선 내가 생성하는 UGC(User Generated Content)에 대해 유연한 관점을 적용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정보가 복제되었을 때, 복제 자체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가지는 것은 나에게 별로 이득이 되지 않는다. 정보는 어차피 복제 본능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복제 본능이 강력한 정보의 자유로운 flow를 도대체 어떻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

나의 정보가 복제되었을 때 차라리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져 보면 어떨까?

복제되는 나의 정보가 나와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고
'나' 없이는 빛이 바랠 수 밖에 없는 나만의 컨텍스트(context)를 내포하고 있는가?

아니면,
누가 사용하더라도 그닥 티 나지 않는 범용적인 단순 컨텐츠에 불과한 것인가?


나의 정보가 타인에 의해 무단 복제되었을 때, 타인의 맥락 속에서 나의 정보가 나만의 색깔을 띠고 유니크하게 빛나고 있으면 나의 정보가 브랜드가 되었으니 좋은 것이고, 나의 정보가 타인의 맥락 속에 녹아 없어졌다면 나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는 것이 쿨하고 좋지 않을까. ^^

나의 정보가 누구나 생성할 수 있는 단순한 컨텐츠인가?  아니면 시간과 장소 여하에 관계없이 나만의 세계관과 철학이 깃들어 있는 나만의 컨텍스트인가?

상품 관점에서, 복제가 쉬운 것은 가격이 낮거나 FREE(공짜)로 형성되기 마련이다. 복제가 어렵거나 복제해도 소용없는 컨텐츠가 아니라면 저가/공짜를 인정해야 한다. 복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commodity(범용품)은 브랜드가 된다. 

정보는 점점 더 복제하기 쉬워진다.  내가 생성한 정보가 복제되는 것을 두려워 하기 보단, 복제되기 어려운 브랜드적인 정보, 나만의 컨텍스트를 창출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네이티브의 시대에선 단순 컨텐츠가 발붙일 공간이 없다. 내가 생성하는 정보가 컨텐츠를 넘어 value 가득한 context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과 성과가 핵심이지, 복제에 대한 우려/분노는 그저 지엽적인 감정에 불과할 뿐이다.

나만의 컨텍스트를 창출할 수 있다면, 제 아무리 거센 복제의 파도가 몰아 닥쳐도 '나'와 '내가 생성한 정보' 간의 유연한 연결의 끈은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며 새로운 '나만의 컨텍스트' 생성의 흐름을 유유히 지속할 것이다. '복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복제되기 쉬운가, 어려운가'가 핵심인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범용, 알고리즘
buckshot과 로버트 그린
Read & Lead의 블로깅 정책
[지식], Stock vs Flow
정보 복제: Information Remix의 미학
정보, 알고리즘
태그, 알고리즘
증식, 알고리즘
저작,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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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변, 알고리즘 :: 2010/02/08 00:08

작년 3월에 구루, 알고리즘을 통해 구월산님의 내공에 대해 포스팅한 적이 있다.

최근 6개월 간 구월산님의 포스트 업데이트가 없었다. 매우 아쉬웠다.

그래서, 트위터를 통해 그 아쉬움을 표현했다.

구월산님 블로그는 6개월이 넘도록 업데이트 되지 않고 있어서 매우 아쉽다. 하지만, 업데이트되지 않아도 여전히 그의 블로그엔 포스가 살아 숨쉰다. 그래서 강추한다. http://songkang.tistory.com/
from web

너무나 감사하게도 구월산님께서 6개월 만의 포스트로 응답해 주셨다.
한참을 쉬었다 다시 컴백.. (1/25)



그리고 2/6에
변화를 아는 힘 포스트를 업데이트 해주셨다. 구월산님의 내공이 여실히 드러나는 글이다.

프로젝트 중에 한번씩 스타벅스에 가서 멍 때리면서 문제에 대해서 몰입을 할 때가 있었다. 커피를 한잔 시켜놓고 식을 때까지 손도 대지 않으면서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면 몸이 막 아파온다.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소음이나 낮게 깔리는 음악소리도 몰입에 전혀 방해되지 않는다. 그냥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하는 시간을 보내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서 사무실로 가곤 했다. 모든 체인점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스타벅스는 몰입하기에 좋은 장소임에 틀림없다.

지금 돌이켜보면 생각에 몰입한다는 것은 머리 속에서 논리를 작동시켜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논리와 말들을 머리 속에서 지우는 과정이다. 말들과 논리와 여러 가지 잡다한 분석들을 머리에서 지우고 나면 어떤 느낌들이 가슴속에 막 파고 들어온다. 사람들 얼굴, 어떤 감정들이 가슴을 채우고 은하수와 같은 흐름이 손에 잡힐 듯이 눈에 보일 듯이 느껴진다. 어떤 의사결정을 염두에 두고 그런 몰입과정을 거치다 보면 어떤 가정은 앞뒤가 막힌 것 처럼 답답하고, 또 어떤 가정은 아무런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올바름은 정해져 있지 않고 해결책이란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항상 말과 논리를 잊고 흐름을 제대로 인지하고 그것에 의거하여 말을 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인정을 해주었다. 어떤 때는 열광적으로 인정을 해주었고, 어떤 때는 존경으로 어떤 때는 간단한 인정으로 말이다.  

회의석상에 빙 둘러앉는 사람들을 보면 가지각색이다. 어떤 사람은 내면에 굉장한 힘을 갖고 있어서 그 힘에 압도되는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고, 굉장히 순순한 영혼을 갖고 있지만 흐르지 않고 멈춰있어서 고집스런 사람도 있다. 온유하고 따뜻하고 추진력이 있지만 작은 일에 집착하고 자기 이익을 먼저 내세우는 사람도 있고 흐름도 있고 올바름도 있지만 너무 그릇이 작아 큰일을 못할 것 같은 사람도 앉아있다.

일이란 그 때에 맞는 올바름이 있다. 사람들은 그 올바름을 잘 알지 못한다. 신문기사, 수치,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이유, 비효율성, 불안감등 다양한 형상으로 문제는 우리에게 지금이 문제라는 것을 알려주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것이  개별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그냥 치부해버린다. 그러면서 불안감에는 휩싸여 있으면서 앞으로 우리는 잘되지 못할 거라는 말만 되뇌고 있다.

올바름을 알지 못하면 집중할 수 없고 결국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없다. 문제들에서 올바름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배운 것은 거저 효율성과 품질 또는 별로 쓸모 없는 전략뿐이다.

현대라는 시대와 문화, 현대가 이루어놓은 문명들, 현대를 만들어낸 위대한 생각들, 규칙, 기술들과 미래가 치열한 전쟁을 하고 있고 대부분 문제는 여기서 파생된다. 사람에 대한 관점이 서로 전쟁하고 있고, 가치로운 것에 대한 생각들이 서로 싸우고 있다. 중세 세계관과 근대 르네상스 시기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처럼 우리는 근본적인 변화 중심에 놓여있고 변화흐름은 빨라지고 있다.

대부분 문제들은 여기서 파생된다. 새로운 세계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그 세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이며, 어떤 범위로 어떤 방식으로 그 세계를 받아들일 것인가가 우리가 당면한 문제이다. 우리는 문제를 너무 협소하게 정의한다. 문제들은 서로 연결되어있고 대부분 우리가 생각하는 문제는 그 모습일 뿐 그 문제를 만들어내는 뿌리에는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다. 결국 올바름을 세울 수 없으며 집중할 수 있는 힘도 없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도 얻지 못한다.

물론 반복되는 실패의 힘은 위대하다. 반복해서 실패하다 보면 결국 우리는 올바름에 이를 수 밖에 없다. 단, 그때까지 치루어야 하는 수많은 댓가를 감수하기만 하면 된다. 개인이 가진 기회, 시간, 자원이 한정적이라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올바름은 변화를 아는 힘에서 나온다. 변화를 아는 것은 거대한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이때까지 우리가 쌓아놓은 지식은 개념과 원리, 기술에 대한 것이다. 당연히 이런 지식들이 필요하지만 오늘날 올바름을 세우기 위해서는 아예 새로운 능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변화를 아는 힘이다.

몰입하고 상상하고 깊이 관찰하고, 자신에 맞게 공부하고 쓸데없는 일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으로 그런 힘을 길러야 한다.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힘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생존하는데 필요한 최소한 능력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변화를 아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변화를 좀 더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어야 하고 그걸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변화를 아는 힘, 지변(知變)의 힘이 내겐 필요하다. 그 힘을 키울 수 있도록 구월산님께서 계속 도와주셧으면 하는 바람이다. 구월산님께서 블로깅을 지속하셔야 내가 지변을 지속할 수 있다. ^^



PS. 관련 포스트
구루,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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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토댁 | 2010/02/08 08:02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가 내려 촉촉한 아침을 차분히 시작하게 해 주셨습니다.
    변화를 알고, 실현하기까지의 힘!!!
    제게도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구월산님꼐서 계속 블러깅 하셔야 함에 강력히 한표를...^^

    즐거운 한 주 되세욤~~

    • BlogIcon buckshot | 2010/02/08 09:27 | PERMALINK | EDIT/DEL

      금주는 구월산님으로부터 '지변'이 가르침을 받은 것만으로도 풍족한 한 주가 될 것 같습니다. ^^

      즐거운 하루 되세요~

  • 친절한시선 | 2010/02/09 22:1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지변.알고리즘에 더하여 생각을 정리해 일목요연하게 표현할 줄 아는 능력 (익프.알고리즘...익스프레션.알고리즘...-_-)도 겸비되어야 하겠다 싶습니다. 좀 건방진 발언이지만, 구월산님의 글을 읽고 나서, 저런 생각이 사실 내 안에도 있었던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구월산님과 저 사이에는 저 은하수와 지구 간격만큼의 차이가 있는데, 즉 그 생각을 내가 인지할 수 있는 언어나 기호로 표시할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표현하지 않지 못하는 것은 그저 관념의 놀음에 불과하군요. 오늘 구월산님의 글을 읽지 못했으면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다음번 도약을 맞이하기 전에 거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뤘겠다는 끔찍한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리지날 구월산님께 감사하고, 이렇게 링크해 주신 벅샷님도 같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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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알고리즘 :: 2010/02/05 00:05

지상 최대의 쇼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김영사

리처드 도킨스의 최신작 '지상 최대의 쇼'를 읽다가 재미있는 문구를 발견했다.
실험이란 내가 직접 뛰어들어서 뭔가를 하는 것이다. 내가 조작하는 것이다. 내가 뭔가를 체계적인 방식으로 바꾸고, 그 결과를 변화가 없는 '대조군'과 비교하거나 다른 변화의 결과와 비교하는 것이다.

실험은 단순한 현상 관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험은 현상 속으로 깊숙히 침투하여 현상에 어떤 교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실험은 개입이요, 조작이다. 이는 질량을 측정하려고 하면 위치를 측정할 수 없고, 위치를 측정하고자 하면 질량을 측정할 수 없다는 양자역학을 연상케 한다. 개입은 대상에 어떤 식으로든 임팩트를 가하게 된다.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읽다가 문득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노트'] 삶과 소비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올 한 해 야구열풍이 의미하는 것 아티클을 트윗에 올렸던 일이 기억난다. 그 트윗에 eustino님께서 주신 댓글의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트렌드는 단순한 현상 관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트렌드는 현상 속으로 깊숙히 침투하여 현상 속에 분포되어 있는 롱테일적인 파편들을 수집하고 그 파편들을 실험적으로 연결하여 일종의 가상 트렌드를 창출한다. 이는 트렌드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고 그 영향이 심대할 경우, 실제 트렌드로 가시화된다. 트렌드 전문가는 트렌드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트렌드의 프레임을 재단하고 트렌드의 흐름을 리드한다.  가장 강력한 트렌드 예측은 트렌드를 직접 만들어서 트렌드 소비자들이 그걸 믿게 만들고 그에 따라 행동하게 세뇌하는 것이다.  트렌드 구루는 정확하게 트렌드를 예측하는 자라기 보다는 트렌드 소비자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유린할 수 있는 자인 것이다. ^^

트렌드를 의식하고 따라가는 행위 자체가 트렌드로부터 소외되었다는 징후이다. 트렌드에 동화된 사람들은 그것을 공기와 같이 여긴다. 동화되지 못한 채 수용/추종을 위해 에너지를 지속 소비하는 것. 그게 소외의 본질이다. 트렌드란 단어가 범람한다는 것은, 트렌드로부터 소외된 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고 트렌드 소외자(=트렌드 소비자)들을 마음껏 유린하는 트렌드 구루들이 범람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트렌드 소비자들의 마음을 유린하는 트렌드 구루들을 덥석 믿기보단, 트렌드로부터 소외된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고 내 주위에 범람하는 허상적 트렌드를 철저히 파괴하는 소외 탈출 시도를 슬슬 전개하는 것이 바람직할 듯.  트렌드 구루가 운영하는 트렌드 랩의 실험용 쥐로 기능한다는 것, 좀 불쾌한 일 아닌감?  헤헤헤.. 농담 반 진담 반이당~ ^^  

롱테일은 애당초 개별 소비자들의 것이다. 파편적 롱테일을 이리 엮고 저리 엮어서 컨텍스트를 추출하고 그로부터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트렌드 전문가들의 작업에 무심코 동조하지 말고 그 안에 내재하는 오버스런 비약의 로직을 냉정하게 읽어낼 수 있는 시각을 갖는 것이 롱테일들의 잼있는 놀이가 되지 않을까 싶다. 트렌드 세팅을 위한 비약의 거품을 톡 터뜨려야 비약을 가능케 한 '트렌드 세팅 알고리즘'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트렌드의 외형적 포장은 어차피 허상이다. 그것에 현혹되지 말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기반 로직을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트렌드는 파편(테일)에서 출발한다. 모두가 트렌드 창조자이다. 누구나 트렌드 전문가가 될 수 있다. 트렌드에 관한 한 누구의 말도 믿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왜소한 소비자가 되어 거대한 비즈니스/마케팅 실험실의 쥐처럼 살아갈 지라도 실험가의 실험 로직을 얼마든지 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즈니스/마케팅 실험가의 뇌 속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똑똑한 실험실 쥐가 되어 가련다. ^^





PS. 관련 포스트
타존, 알고리즘
상충, 알고리즘
Detail = Remix Wetail (디테일의 힘: 롱테일 to 트렌드)
예측, 알고리즘
소외,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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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전설의에로팬더 | 2010/02/05 00:3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소비자를 관찰하거나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소비자의 입에서 나오는 정돈된 단어보다, 무의식중에 발생하는 행위 하나가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행위를 연결하면 트렌드를 만들 수 있는 전문가가 될까요? 재미난 생각이 들어 댓글 남겨 봅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0/02/05 09:23 | PERMALINK | EDIT/DEL

      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정돈되는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것들이 분명 있는 것 같아요. 의식적으로 다듬어서 내보내는 표현과 함께 무의식적으로 표출되는 소비자 반응 속에 열쇠가 숨어 있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파편과도 같은 수많은 트렌드 후보군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마구 흘러다니고 있을텐데 그걸 잘 놓치지 않고 잡아내고 발전시키는 노력은 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트렌드 전문가의 영역만은 아닌 것 같구요. 귀한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

  • BlogIcon 夢の島 | 2010/02/05 01:3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양자역학의 측정의 가설에서는 기존의 여러 위상이 중첩되어 있던 것이 측정을 통하여 붕괴되고 단 하나의 가능성만이 남는다고 하지요. 트렌드를 예측하고자 하는 행위는 양자역학에서의 측정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트렌드 구루에 의해 만들어진 트렌드는 수많은 가능성을 트렌드 구루의 손에 의해 배제당한 트렌드이기도 하죠. 타인이 규정한 가능성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추구하는 것, 곧 자기 자신의 트렌드를 만드는 것은 사회의 부품이 아닌 자율적인 인간이기 위하여 가야 할 길이기도 하군요.

    • BlogIcon buckshot | 2010/02/05 09:24 | PERMALINK | EDIT/DEL

      하나의 컨셉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리게 되는 수많은 가능성들.. 그걸 잊지 않는 것이 참 중요할 것 같습니다. 측정한다는 것은 분명 뭔가를 확실히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오늘 다시 리마인드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

  • BlogIcon 토댁 | 2010/02/05 21:0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예전에 생물학실험실습준비 하느라 하얗고 자그마한 실험용 쥐를 길렀었습니다.
    애미가 실험실에서 낳는 바람에 제가 그 녀석의 보모가 되었었죠.ㅎ
    정말 똑똑 한 녀석이었습니다.
    미로 속에 넣고 먹이를 찾는 반복학습 실험 때문에 나랑 몇일 잘 놀았었고
    실험도 잘 했는데 수업 전날 그만 죽어버렸어요.
    아직도 그날의 가슴 먹먹함이 남아있습니다.
    실험실 뒤산에 묻어주었었는데.....

    갑자기 트렌드에 대한 님의 글을 읽다 그 녀석이 생각하는 생뚱 맞은 토댁입니다..^^;;
    아직 수업 중이랍니다.^^

    즐거운 주말보내셈~~

    • BlogIcon buckshot | 2010/02/06 10:43 | PERMALINK | EDIT/DEL

      교감인 것 같습니다. 실험가와 실험대상은 상하관계가 아니라 서로 수평적인 관계로 교감을 나누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은 실험가만의 몫은 아닌 것 같구요. 실험대상이 실험가를 실험대상으로 인식할 수 있을 때, 빅뱅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생뚱 댓글 드려 죄송해여~^^

  • bell | 2010/02/05 21:48 | PERMALINK | EDIT/DEL | REPLY

    다그치는 듯한 트렌드 구르들... 좀 무섭더라구요. 본의아니게 오히려 트렌드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만든다는...^^; 글 중에 트렌드를 가능케 하는 기반 로직을 냉정하게 평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음.. 그 밑바탕에 트렌드를 따르든 그렇지 않든지 간에 그 자체를 인정하는 여유도 살포시 깔아두면 더 좋지 않을까요? 아! 정말이지 즐기고 싶은 그 재미있는 놀이를 위해서 말이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좋은 글들, 항상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0/02/06 10:44 | PERMALINK | EDIT/DEL

      말씀하신 것처럼, 트렌드의 기반로직을 냉정하게 평가하면서 그 트렌드를 여유있게 관조할 수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게 놀이이고 삶의 재미이겠네요. 귀한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

  • BlogIcon ego2sm | 2010/02/05 23:5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실험이란 내가 직접 뛰어들어서 뭔가를 하는 것이다. 내가 조작하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모두 '개인 브랜딩'해야하는 시대가 열린 것 같습니다.
    항상 벅샷님 포스트를 읽으며 저도 리포스팅하게 되는 것 같아요. 덧글로^^
    무엇보다 김난도 교수님 칼럼 중에 놓친 걸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비밀이지만, 여기선 대놓고 제가 야구관련 책을 기획하고 있어서 더욱 반가웠어요.^^)

    • BlogIcon buckshot | 2010/02/06 10:46 | PERMALINK | EDIT/DEL

      1인미디어는 블로그/트위터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조작당하지 않고 조작하고, 범용화되지 않고 범용화하는 개인 주체에 대한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야구관련 책이요? 와.. 궁금하네요. ^^)

  • BlogIcon 애드민 | 2010/02/07 00:5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실험에 대해 새로운 관점에 대해 배우게 되었네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열어보기 전까지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실험도 사실은 능동적인 수행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된 듯하네요.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0/02/07 10:07 | PERMALINK | EDIT/DEL

      인생 전체가 거대한 실험이라는 측면에서 인생은 '양자역학 게임'이란 생각이 듭니다. 관찰과 측정을 지속하면서 끊임없이 대상에 영향을 주고 대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대상과의 연을 지속하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 네트워크 속을 인간은 수시로 실험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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